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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막내를 키우는 마음으로 첫째를 키운다

흔히들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엄마도 처음이고 초보 엄마라 예민해지고 불안했다고 그래서 좋은 걸 봐도 이쁜 걸 봐도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고 지났었다고들 얘기한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때는 어느 정도 경험치도 있고 여유가 생겨서 첫째 땐 걱정만 안고 살았다면, 둘째 아이는 어쩜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고 말들을 많이 한다.      




딸아이랑 어디를 가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막내딸인가 봐요. 너무 귀엽네요”

“아뇨. 첫째 딸이에요”

내가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나름 스포티한 옷차림에도 그렇게 묻는다면, 나의 얼굴 피부의 노화 정도와 아이의 나이를 어림잡아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 이거 땅에 떨어졌는데 그냥 먹어도 될까?”

“어, 금방 주웠으면 털어먹어도 괜찮아”

옆에서 쉬지도 않고 조잘거리고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나대는 딸에 지쳐 나는 무신경하게 대꾸했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웃는다. 겨우 첫째 아이를 키우는 생초보 엄마인데 하는 건 애 서넛 키워본 엄마 같다고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고 너스레를 떤다. 

“야, 이 정도는 그냥 먹어도 되는 거 아냐?”

“요즘 젊은 엄마들 어떤 줄 알아? 그런 거 절대 안 먹여. 물티슈에 비닐장갑에 얼마나 꼼꼼하고 깔끔한데 너 긴장 좀 해라”     


생각해 보니 나를 막내딸 엄마로 생각하게 만든 건 나의 피부 주름도 한몫했겠지만,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었나 보다. 나 역시 초보 엄마라 아이를 키우는 필수 요소인 의식주에 있어선 예민해지고 잘 모르니까 몇 번이고 확인하고 확인해야 하는 불안감도 늘 존재했었지만, 필수 의식주가 아닌 문제에 대해선 자연스럽게 내 나이와 성격이 만들어주는 경험치로 편안하고 둔감한 엄마의 면모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좀 더러워도 그렇게 깔끔하지 않아도 우리 살아가는 내내 그다지 큰 위험이 닥치지는 않고, 넘어지고 까져서 피가 좀 나더라도 별다른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딱지가 앉는다는 것쯤은 그냥 알고 있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함께 야외 놀이를 하다가도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 약간 빨간 피라도 비치면 기겁을 하고 바로 소독과 상처 치료 연고제를 찾는 요즘 엄마들에 비하면 살짝 온도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땐, 엄마도 아이도 처음이라 만약 2인 삼각 경기를 나서는 팀이라면 남들보다 먼저 뛰려는 마음만 앞서서 넘어지고, 서로 탓을 하고 또 먼저 일어서려다 다시 넘어지고 그래서 어쩌면 결승전을 겨우 통과하고 나서는 서로 마음이 상해서 한동안 서먹해지는 서툴기 짝이 없는 모양새일 것 같다. 


얼마 전 TV에서 방송했던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고액과외와 모든 인맥과 경제력을 총동원해서 아이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목적은 달성했으나 정작 그 좋은 대학에 다니는 내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불행한 이야기에 대해 모두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첫째 딸아이를 명문대학에 진학시켜 놓고도 딸이랑 서먹서먹 해져서 내 친구는 친구대로 상처를 입고 딸은 딸대로 마음 줄 곳이 마땅치 않아 방황하는 가족도 있다. 그래서 둘째 아이에게는 첫째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키운다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하소연을 들으며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했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지난 십여 년간 자신을 못살게 몰아붙였던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그리고 미처 알아주지 않아도 딸이 안정된 미래를 가지게 된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마음은 충분했으리라는 그 마음이 십분 헤아려진다. 


좋은 대학을 입학한 딸은 이제는 엄마 곁에 남지 않았다. 엄마는 어린 둘째를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명문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여유롭게 사는 인생도 결코 초라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 그리고 때론 이 소박한 인생 자체가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따듯한 시선으로 남은 삶을 바라볼 것이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이 아이는 내가 아니다. 


따라서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아이가 커 가면서 내 곁에 있지만, 엄격히 나와 분리된 상대로서 잘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에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초점이 맞지 않아 상대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쉽게 나의 경험치와 판단으로 상대를 잘못 이해하고 재단해 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고 싶었던 명문대학을 아이도 가면 좋아할 것이라고 쉽게 오해해 버리고, 내가 경험했었고 좋다고 판단했었던 많은 것들을 아이도 원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얽히게 만들기 시작한다. 


서로 더 많이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심리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마음속으로 늘 다짐한다     


나는 워낙 눈치가 없는 성격이라 애초부터 상대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는 어림잡아 가늠하기가 너무 어렵다. 어쩌면 엄마의 생소한 질문에 대답을 생각하는 동안 아이는 잠시나마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또한 그만큼 성장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우린 서로 완벽한 타인인데 내 곁에 있다고 해서 어떻게 다 안다고 감히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용기는 없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안전과 생명에 관한 한 예민한 직감으로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낸다. 때론 엄마의 발달한 촉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지만, 아이가 크면서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아이에 대한 심리적, 공간적인 거리 두기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둔감하고 매정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내가 띄워둔 그 거리만큼 아이가 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가 띄워둔 그 거리만큼으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인생 끝까지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과 응원을 보낼 수 있는 멋진 2인 삼각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늦은 나이에 출산해서 남들 막내 키우는 나이에 겨우 첫 아이를 시작하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나서 막내를 키우는 여느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 지금 나를 올려다보며 한껏 웃고 있는 딸아이에게 애써 초보 엄마 티를 내지 않으면서 위로 여럿 키워본 숙련된 엄마의 넉넉한 마음으로 불안함이나 예민함보다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적당한 거리를 두는 그리고 내내 지켜볼 수 있는 막내 엄마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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