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마치고 “얘들아, 우리 집에 가서 놀자”라고 친구들을 우르르 초대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집이 엉망진창이었을 때도 냉장고가 텅텅 빈 날도 엄마 마음과는 상관없이 친구들을 데려온다. 사실 그런 것들은 아이들이 놀러 와서 노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긴 하다.
네다섯 명의 아이들이 딸아이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놀고 있다.
“우리 엄마는 맛있는 걸 많이 해줘. 돈가스도 해줬어”
“그래? 우리 엄마는 용돈을 많이 줘”
“우리 엄마는 잘 까먹어! 7초면 자기가 말한 걸 까먹어!”
지나가다 우연히 들으니, 마지막에 말한 아이가 내 딸인 것 같다. 다들 자기 엄마를 자랑하는 자리에서 그런 걸 자랑이라고 떠들다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마치 내가 까먹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측정이나 한 것처럼 구체적인 시간까지 저렇게 못을 박아 얘기할 수 있을까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정말 7초 만에 까먹는 엄마일까? 심오한 자아 성찰의 시간으로 몇 분을 보냈다. 상대가 그렇다면 그렇게 느꼈다면 어쨌든 문제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무조건 먼저 아니라고 잡아떼고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아이가 하는 말들을 건성으로 영혼 없이 대답을 해주고, 재차 아이가 확인 차 물어볼 땐 정작 앞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해 ‘아까 뭐라고 했었는데?’라고 반문을 했을 때 아이의 실망스러운 얼굴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엄마 문방구에서 나 맛있는 거 사 먹을래”
“오늘은 안돼, 다음에 사줄게.”라고 일단 오늘의 불량식품 구매를 피한 다음 날.
“엄마 나 오늘은 문방구에서 맛있는 거 사 먹을래”
“안돼”
“지난번엔 다음에 사준다고 했잖아. 왜 안돼?”라며 항의하는 딸
“내가 언제 지난번에 사준다고 했었어?” 당연히 나는 사준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자기가 말한 걸 맨날 까먹어. 7초 만에 까먹고 또 안된다고 하고 정말 속상해”
여기서 7초는 정말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본다. 나에겐 아이랑 대화했던 그 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영혼 없이 대충 얼버무려 그 순간을 넘기려 했던, 그리고 넘어가고 나니 기억조차 없었지만, 우리 딸은 나와 대화하는 모든 순간이 진지하고 엄마에게서 받은 약속은 훗날을 보장해주는 보험과도 같은 효력이 있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그 말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딸의 진심에 영혼 없이 건성건성 응대했던 나의 무심함이 너무 미안했던 순간이었다.
“그랬었네, 엄마가 다음에 사준다고 했었고 오늘이 그다음이네. 미안해 기억 못 해서. 어서 가서 네가 먹고 싶은 거로 사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아이가 문방구를 향해 쌩하고 달려 나가고 없다.
나는 원래 머릿속에 많은 정보를 입력시키지 않는 습성이 있다.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통과한 후, 어른이 되어서는 굳이 암기라는 도구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릿속에 많은 자리를 가득 채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필요할 때마다 찾아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하리라 다짐한다. 대신 그 빈자리에 나만의 사유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여유로운 공간으로 이용하겠다는 기억력이 빈약한 자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생활 속에서 그다지 꼭 기억해야 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것을 제외한 대부분은 나에게 영구 저장되지 않는다. 이런 나의 후천적 성향은 나의 타고난 기억력의 감퇴에 든든한 한몫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기억력이 감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임이 틀림없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보고 듣고 축적한 그 방대한 데이터들을 계속해서 저장한다면, 우리의 하드 디스크는 얼마나 커야 할까? 나의 우려에 대하여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최대한 뇌의 20% 정도 사용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정도 되는 과학자가 20% 정도 사용했다고 하니 내 뇌는 거의 새것과 비슷한 용량이 남아있을 수도 있을 거란 자조 섞인 자기 비하를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기억력이 자꾸 감소하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며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이 글귀는 음미할수록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 글귀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사랑할 때는 세상 모든 게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감 색이 바래듯 사랑도 색채가 바랜다. 때로는 분노했었고 아팠었던 모든 기억도 모조리 다 기억나고 행복했던 모든 순간이 원색 그대로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현재의 나의 모습과 비교 견적을 내게 되는 순간을 누구도 원치 않을 것 같다. 인간이 잊어버리고 또 잊힐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임이 틀림없다.
7초 건망증이란 이름만큼 나를 옆에서 늘 지켜주고 일깨워주는 우리 딸. 아직 항상 내 손을 잡고 다니고 내 가슴께서 나를 위로 올려 쳐다보는 그녀에게 난 뭐든 물어본다.
“아까 그거 뭐라고 했었지?”
“내가 마트 가면 뭐 사야 한다고 했더라?”
딸은 자연스럽게 내 물음에 답을 친절하게도 해준다. 항상 같이 다니는 파트너의 부족한 부분을 전력 보강이라도 하듯이 항상 줄줄 다 외우고 있는 것 같다. 여러모로 부족한 엄마 덕분에 딸은 커가면서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조금 더 꼼꼼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두를 신이 보살피기 어려워서 신을 대신에 엄마를 보냈다는 가슴 뭉클한
문장 대신, 우리 가족 모두는 신이 엄마인 나를 보살피기 위해
우리 딸을 보낸 것에 맞다고 나를 다독였다.
이 든든한 나의 외장 하드 덕분에 나의 기억력은 더욱 구멍이 생기는 것 같지만 50cm 남짓의 작은 사람이 언제 이렇게 커서 똑똑해졌는지 대견스럽기 짝이 없다. 나는 더는 메모지에 기억을 옮겨 적는 수고나 휴대전화에 저장시키는 수고로움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랑 둘이서 함께 이것저것 둘러보며 우리가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읊어보며 기억했다가 나중에 내가 혹시라도 물어보면 알려달라고 얘기한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그래서 쉽게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나는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셈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뛰어난 이해능력과 기억능력이 딸아이의 학습 분야에서는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뛰어나게 두드러져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습과 일상생활은 다른 분야이다 보니 서로 요구되는 면이 다른 것이라고 나름 이해를 하고 있다. 솔직히 뛰어난 학습 능력보다는 일상생활 전반을 원활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현실 삶에서는 더 쓸모가 많을 뿐 아니라 내가 평생 갈구했었던 능력이기도 했기에 어쩌면 나는 딸이 부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