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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는?

초등 2학년 딸과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아이가 묻는다.

“엄마, 할머니는 지금 몇 살이야?”

“그럼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는 몇 살이 되는 거야?”

“음…. 91살이 되겠지….”

“그렇게 나이 많은데도 살아 있을 수 있어?”

“그, 그럼 요즘은 120살까지도 살아, 내 친구 엄마도 지금 100살이야, 이제 얼른 자자”


91살이라는 나이에 우리 둘 다 깜짝 놀라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하는 딸에게 얼른 거짓말로 둘러대며 우리의 슬픈 대화를 끝내고 자려고
 돌아누웠는데 가슴이 너무 먹먹했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자려고 누웠는데 딸이 또 묻는다.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사람이 120살까지 살 수 없대, 엄마 어떡해?” 

이 아이는 왜 꼭 자려고만 하면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지.

이젠 거의 울기 직전이다. 어젯밤에 잠시 뜬금없이 했던 우리의 대화가 이리도 심각하게 우리 둘 사이에 맺혀있을 줄이야.

“누가 그래? 옛날엔 병원 가기도 힘들고 먹는 것도 별로 맛있는 게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난 내 엄마 아빠, 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120살 넘어서도 우리 옆에 살아 계실 거로 생각하는데, 

넌 어때?"

딸은 당장 자기 엄마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로 대상을 바꾸니 한결 걱정을 덜어 수월하게 생각이 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수를 굳게 믿으며 엄마의 수명에 대한 걱정은 일단은 접어두고 바로 꿈나라로 날라 가버렸다.     


애초에 결혼과 임신을 생각했을 때 진작 "왜, 왜 이런 것까지 생각을 못 했었나" 혼자 뒤집어 생각해봤다. 그 당시에도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다고 느꼈었는데, 고작 나는 내 나이 60살 환갑에 아이의 대학 입학식과 환갑잔치랑 겹치지 않으냐는 생각 정도, 그리고 그때를 위하여 폭삭 늙어 보이지 않도록 외모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했었는데 우리 딸이 질문한 내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에 대한 답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누구나 첫 만남부터 이별의 끝을 생각하며 슬퍼하진 않지 않는가? 그저 우린 첫 만남의 설렘과 기쁨을 느낄 뿐이지, 첫 만남부터 이별을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엄마는 일찍 결혼하셔서 내가 오십 살이 넘어도 아직도 내 옆에서 이것저것 잔소리도 하고 나를 챙겨주시지만, 우리 딸이 내 나이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있다 한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며칠 동안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늦은 나이에 출산하고 남들은 젊어서 하는 고생을 늙어서 몇 배로 사서 하면서 고생 또 고생하며 키웠는데, 나중에는 또 나이 들어 빨리 죽는다고 자기만 혼자 남겨놓는다고 나를 무책임하다고 원망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뻗치고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생로병사의 앞에서 이에 관한 고민은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이미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며칠 후,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가 혼자 남겨질 어린 딸에게 엄마의 사랑을 편지로 써서 남긴 책, 「곁에 없어도 함께 할 거야」 : 삶의 끝에서 엄마가 딸에게 남긴 인생의 말들(헤더 맥 매너 미, 2017)을 읽으면서 난 거의 식탁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아침마다 등교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자는 아이 깨우기부터 시작해서 두 손은 부지런히 아침 준비에 전념하며 목소리는 최대 음량으로 아이에게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지시하기 바쁘다. 혼내고 달래고 해서 겨우 현관 앞에 책가방 메고 선 딸을 보면 이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렇게 엄마 미소로 아이를 등교시켜 놓고, 햇살 좋은 아침 나는 다시 또 그 책 속의 주인공, 불치병을 앓고 있는 엄마가 되어 엎드려 엉엉 울었다. 


마침 지나는 길에 우연히 우리 집에 방문한 동생이 깜짝 놀라며 혹시 우울증이라도 있냐고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다. 부끄럽지만 갑자기 울음이 멈춰지지 않아 흐느끼면서 읽던 책을 보여 주며 더듬더듬 줄거리라도 말해주려 하는 나에게 동생은 지금 뭐 하는 거냐며 이 시간에 집에 혼자 앉아 엉엉 울 일이냐며 타박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몇 마디 대화하면서 울음도 겨우 그치고 다시 현실의 나로 되돌아온 나는 조금 나이 들긴 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아픈 곳 없는 나의 건강 그리고 이쁜 딸의 존재에 대하여 무한 감사할 따름이었다.      


세상 엄마들이 다 그러하듯이 난 딸이 너무 좋다. 


어쩌면 그저 나이가 많아 할머니 같은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서 그런가, 매사에 오냐, 오냐 하며 다 받아주는 엄마의 탈을 쓴 할머니 육아. 위에 형, 언니들이 있는 늦둥이 엄마라면 그동안의 노하우로 아이를 노련하게 키우련만, 나는 늦둥이 엄마 나이에 첫아이를 키우는 매사 모든 방면에서 서투름 그 자체이며 내면은 황혼 육아를 하는 할머니 마음인 것이다.      


엄마의 변변치 못한 빗질 덕분에 종종 정글의 모글리를 연상시키는 자연방치 헤어 스타일을 하고 조금만 화가 나도 소리를 백 빽 지른다. 이젠 제법 10년 동안 쌓은 그녀만의 논리로 나에게 따져 묻기도 하는 딸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세상 오직 하나뿐인 그대인 것이다. 그런 그녀를 위해선 이렇게 울고 있거나 우울할 시간이 없다. 우리가 함께할 미래의 어느 시점에 깃발을 꽂고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면 되는 것을. 나에겐 아직 가능성이라는 멋진 선물이 있지 않은가?     


며칠 동안 남에게 말 못 할 고민이라도 가진 것처럼 끙끙대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엄마인 저자에게 마음 깊은 위로를 보내며 지금 아이와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하는 이 시간에 감사하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에 가 있던 나를 현재로 다시 데려와 토닥거려주었다.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지금에라도 이렇게 만나게 된 우리, 함께 있는 시간을 행복하고 감사하고 즐길 수밖에. 그리고 나에겐 7살 연하인 남편이 있다. 노화와 수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부부에겐 시차를 두고 딸을 보살필 수 있는 우리 부부만의 전략인 셈이다.      

결혼 전 등산으로 다져진 나의 체력은 지난 육아 10년을 버티며 많이 소진된 것 같다. 육아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몸에 좋다는 멀티 비타민 한 병도 샀다. 봄이 되면 엄마들 모임으로 등산모임도 하나 만들까 생각 중이다.


나의 체력은 우리 딸이 그토록 원하는 미래 어느 날의 엄마를 존재하게 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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