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Oct 26. 2020

말로 하면 잔소리, 글로 쓰면 베스트셀러

일찍 결혼한 우리 엄마는 내가 오십 살이 된 지금도 옆에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신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애 키울 땐 이렇게 저렇게 해라 등등의 생활 전반에 걸친 잔소리를 하시만, 마흔두 살에 엄마가 된 나는 딸이 내 나이가 되면 구십일 세…. 그때는 아이 옆에 있다 해도 희미해진 기억과 쇠락한 체력으로 지금의 내 엄마처럼 딸에게 해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딸….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쁠 이 아이.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지만, 아이도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많다. 만화 영화 속 귀신 잡는 이야기 그리고 얼마 전 우리가 함께 심은 분꽃 화분이 얼마나 컸는가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우리는 마주 앉은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서로의 얘기를 끊지 말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만약 아이를 앞에 딱 앉혀놓고, 묻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엄마의 과거를 이야기하느라 붙들어 둔다면 아이는 아마 5분도 안 돼서 도망갈 궁리를 하거나 나에게 화를 낼 것이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얼마 전, 밖에서 저녁을 먹고 어둑해진 초여름 바람을 쐬며 오랜만에 세 식구가 여유로운 산책을 했었다. 내가 문득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엄마가 잘하는 거 두 개만 얘기해봐”

사실 그날 오후 학교 신문에 실린 글을 우연히 읽었는데 어떤 아이가 자기 엄마가 텃밭에서 키운 열무로 열무김치를 만들어서 너무 맛있었다는 그리고 자기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한다는 글이 실린 일기를 읽으며, 우리 딸은 과연 엄마가 잘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던 까닭이었다.


“으응……. 글쎄, 모르겠어”라며 답을 회피하는 딸에게 재차 답을 요구했었다.

“있잖아, 그냥 편하게 얘기해봐 봐. 우리 가족 잘하는 거 두 개 못하는 거 두 개씩 얘기해볼까?” 딸은 예상과 달리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났다! 엄마는 잔소리와 까먹기 잘하잖아!”


띠로리…….

순간 나는 잘하진 못해도 10여 년을 먹어온 엄마의 음식 솜씨 또는 무릎이 닳도록 따라다니며 장단 맞춰 놀아준 엄마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엄마는 나랑 잘 놀아줘 등등의 대답을 무의식적으로라도 기대했었던 나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장난 반, 농담 반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얼굴에 당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 그래? 그럼 엄마가 못하는 거 두 개만 얘기해봐”

“음…. 음식 만들기랑 그리고 모르겠어. 엄마 우리 다른 얘기 할래”

그 후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빠는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딸이 엄마인 내게 내가 잘하는 게 잔소리라고 말하는 지점에서 내 모든 신경이 멈춰서 버린 기분이었다. 


어릴 적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서 1등 하고 받은 상장에 종목이 잔소리라고 적힌 상장을 받은 것처럼 나는 혼자 부끄럽고 적응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얼마 전까지도 부모님은 나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마흔두 살 노산의 절정에서 엄마가 되며 비로소 일상생활에 실전으로 적응하게 된 딸이 걱정되어 잔소리를 달고 사셨다. 결혼 후 맞닥뜨린 가정생활과 육아의 모든 것에 서툴다 못해 잼뱅이 수준의 딸을 보면 걱정보다 애잔함이 더 하셨으리라 짐작된다. 아버지는 엄마로서의 내 건강을 늘 걱정하시며 휴식과 운동, 그리고 적절한 식습관에 대한 잔소리를 늘 하시며 어머니는 육아와 요리 등등에 관한 일들에 잔소리하셨다. 모든 잔소리를 묵묵히 참고 견디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께 이제 잔소리를 그만하시라며 돌직구를 날렸고 이후 어머니께는 귀를 막는 모습으로 잔소리에 대한 저항을 몸소 시연했다. 이들 사건 이후 부모님은 충격을 받으셨고 늘 수동적으로 받아주기만 하던 첫째 딸 나에게 다시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내가 엄마가 되면서, 내가 하는 말들이 잔소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의 여러 우수한 능력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종목이 잔소리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다. 


나도 이제껏 그렇게 잔소리를 싫어하면서 살았는데 그래서 내 깐에는 정말 간략하게 고급 정보만 전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진정 어린 삶의 조언들이 남편과 딸에게 잔소리라는 날개를 달고 전달되는 현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잔소리와 조언을 검색해보니, 잔소리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필요하고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고, 조언은 상대방이 주체가 되어 상대방이 필요해서 나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때 내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잔소리와 조언 모두 같은 진정성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지라도, 남편이나 딸이 나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내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허공에 대고 이 좋은 내용을 발설해 버리면 이것은 잔소리의 타이틀을 달고 공중에서 분해돼 버린다. 아무도 잔소리를 기억해서 잔소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가려하지 않는다.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가는 그래서 무한 반복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엄마가 말로 하면 공중분해되어 버릴 잔소리지만, 서툴러도 글로 한 자 한 자 적어 두었다가, 우리 아이가 이다음에 커서 혹시 인생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진정한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내가 옆에 없거나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꺼내 보면 어떨까? 


이 서툰 글이 답을 구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거나 작은 안식이라도 되어 준다면 그 글은 딸과 나 사이에선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어느 날 문득 책상 앞으로 내가 소환된 이유라면 지금 글을 쓰는 이유가 설명될까.     
이전 15화 7초 엄마의 외장 하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