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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너는 나보다 멋진 어른이 될 거야

 딸이 나를 쏙 빼닮았다. 


엄마인 내게 말대답은 물론이고 조목조목 따지는 게 예사롭지가 않다. 버릇없는 행동이라 아이에게 주의를 시키면서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우리 부모님께 많이 따지고 논쟁을 밥 먹듯이 했던 기억이 비로소 마치 무슨 그림의 색상이 바래졌다가 다시금 선명해지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여러 장면 장면이 떠올랐다. 


공부부터 시작해서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사고 이야기 가족 간 여러 관계에 대해서 어른들과 생각이 다른 부분은 그냥 “예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다. 끝까지 내 생각과 주장을 고집하고 어른들의 허점과 단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오래전 그 시절엔 사회적으로나 가족 내 분위기도 권위주의가 팽배해있던 시절이었는데, 어찌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모님은 내게 권위로 내 생각과 태도를 누르려고 하셨던 적은 없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어린 딸의 주장을 듣고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인내와 수련이 필요한지 비로소 깨닫고 있다.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아이가 올바른 이의 제기 방식을 배웠을 리 없고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처리할 줄도 모르고 그냥 막무가내 자기에게 좋은 것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달라는 고집을 부린다. 그나마 울음과 떼쓰기가 아닌 자기만의 논리로서 풀어낼 수 있는 점은 박수를 보내고 싶기도 하지만, 그 순간 ‘어른에게 함부로 또는 엄마에게 버릇없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고 순수하게 아이의 주장만을 그대로 들어주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어려움을 견디고 아이의 주장만을 가만 들어보면 그렇게 말이 안 되거나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지는 않는 거 같다. 때론 논리 자체가 너무 웃기고 귀여워 불쑥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아이는 완전 불같이 화를 낸다. 자신은 너무나 진지한데 듣는 사람의 경거망동하는 태도 때문에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생기기도 한다.      


딸의 논조에 조금 더 세련된 화법과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고 사회 속 예의범절이 조금만 가미되어도 따박따박 말대답이라는 타이틀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대화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그 점이 아쉽다.      


남편은 나와 생각이 달라서 아이가 말대답을 한다고 혼을 내기 일쑤다. 때때로 대꾸할 말도 딸릴 때는 너무나 손쉽게 ‘어디서 아빠한테 그렇게 말을 하느냐? 또는 어른한테 그 표정이 뭐냐’라고 그 순간부터는 도덕과 예의로 바로 화제가 넘어가게 된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서도 실제로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풀어내지 못한 채 그거 아이의 성급하고 거칠었던 화법 그 자체에 대해서 혼이 난 상태로 씩씩거리며 그 자리는 무마가 된다.     


남편과 함께 마주 앉아 나는 “솔직히 우리 딸 버릇없이 말대답하는 거 그거 다 내 거야. 내가 딱 저랬었어.”라고 실토를 하니 의외로 남편도 자기도 어렸을 때 너무 고집이 세서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았는데 우리 딸의 속상한 마음 누구보다 잘 안다고 순순히 자백한다. 둘이 서로 마주 보고 현재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해서 그 누구를 탓하겠냐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고 있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등장한 우리 딸. 


생각을 전달하는 솜사탕과 화살 중 무얼 선택할까?


“그럼 나는 아무런 잘못 없는 거네. 다 엄마 아빠의 안 좋은 점을 내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난 거잖아.”

나는 바로 달려가 우리 딸을 꼭 껴안아 주며 속삭였다. 

“엄마 아빠 안 좋은 점을 물려줘서 미안해. 살아 보이니까 그거 가지고 사는 게 별로 안 좋더라고. 내가 그거 어떻게 좋게 변하게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비법을 알려줄게” 솔깃한 우리 딸은 호기심 잔뜩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만약 네가 엄마한테 기분 나쁜 게 있어서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 말을 뾰족한 화살에 매달아 엄마한테 던진다면 엄마는 화살에 맞아 상처가 나고 너한테 화를 낼 수도 있어. 대신 엄마가 좋아하는 솜사탕에 매달아서 전해 준다면 엄마는 솜사탕을 기분 좋게 먹고 너의 얘기에 바로 귀 귀 기울여 줄 수 있을 텐데……. 엄마도 어릴 때 화살을 많이 쏘았었는데 커보니까 화살보다는 솜사탕이 훨씬 좋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어.”


요즘 아이는 자기의 생각을 솜사탕에 매달아 전달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게 효과 면에서도 훨씬 좋다는 것을 아마 본인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잘 연습이 되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즐거움을 많이 느끼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내 의견을 더욱 뾰족하게 만들고 소리와 발음을 더 크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의견은 첫머리만 들으면 무얼 말하려는지 의중이 대충은 짐작이 갔었다. 그러니 정작 상대방이 말하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오해와 착각인 경우가 많았으며 나의 말하기 태도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느껴져서 정작 설득이 아니라 혼자만의 발표 형식으로 일방적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열 살인 우리 딸의 말하기 방식과 꽤 비슷한 면이 많았던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러던 나의 말하기 방식은 결혼하면서 아이 또래 젊은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조금씩 고쳐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흥분한 상태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은 나보다 예닐곱 살이나 어린 엄마들이기에 내 동기나 선배들과의 의견 충돌 상황과는 구성원들이 달랐으므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연장자의 미덕인 여유와 너그러움을 기본 사양으로 장착해야 했었다. 나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 엄마들을 나의 화살 같은 나의 말투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늦은 결혼은 나의 인성에 여러 방면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혼자 흐뭇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껏 나를 따라다니는 나의 단점들을 고대로 만나보게 된다.


 위에 말한 말하기 방식도 그러하지만 금방 싫증 내는 것 등등 나열하기도 부끄럽지만 어쨌든 나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전된 방식이라고 할까?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딸은 나와는 다른 개체이고 앞으로 그녀에게 펼쳐질 시간과 상황은 나와는 전혀 별개인 삶을 살아나가면서 그런 단점들을 극복하는 모습 또한 나와는 다른 그녀만의 방식으로 부딪치고 변화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면서 가만 응원할 것이다. 


마치 잔뜩 구겨진 옷을 물려줬는데, 어느 날 말끔하게 다림질해서 입고 나온 옷처럼 언젠가는 나의 주름진 단점들을 극복해서 멋지게 그녀만의 스타일로 리폼해서 잘 입고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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