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환 복귀 vs 강원랜드 폐업

도박은 밥줄을 끊어도 마땅한 중범죄인가

매거진 '촌철살인미수범'은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아재의 시각으로 쓴 짧은 시사논평입니다. 극단주의자만 사이다를 날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양비론과 양시론, 회색주의와 냉소주의가 선사하는 기발한 쓴웃음을 즐겨주세요

늘 궁금했다. 도박은 중범죄일까? 몇몇 연예인들이 해외원정 도박을 해 파렴치범인 것처럼 뉴스에 비치곤 한다. 그때마다 도박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의 범죄인지 궁금해진다.

자기 돈을 탕진하는 짓이 어리석을지언정 엄청난 해를 입히는 사회악인지는 잘 모르겠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사기 등 다른 범죄들과는 달리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물론 외환관리법이라든가 하는 법에 저촉되는 경우는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마카오 카지노에 갔다고 해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여기는 것이 옳은가?

도박이 중범죄라면 왜 국가는 강원랜드를 운영할까? 범죄 조장 아닌가? 강원랜드는 되고 마카오는 안 되는가?라스베이거스는 또 되나? 적당히는 되고 과하면 안 된다? 적당함의 기준은 나라가 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로또는 또 왜 파는가? 내가 돌아다니면서 수억 원어치 로또를 사면 처벌받는가? 로또로 폭망한 사람도 중범죄자인가?

도박을 죄악시 여기는 이유는 뭘까? 추론컨대 공인의 도박이 사람들의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논리 같다. 그런데 사실 도박이 중독성은 클지 몰라도 전염성은 별로다. 베르테르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유명인이 도박을 했으니 나도 해야지,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오히려 도박은 폭망한 쪽보다 대박친 경우가 쉽게 전염된다(라스베이거스 손지창 장모의 사례). 전염성이 걱정되다면 돈을 딴 연예인을 아웃시켜야 한다. 어쩌면 신정환의 뻘짓은 도박 예방에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혀를 끌끌 차면서 도박으로 신세 망쳤군 하는 반응을 시전하는 반면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다른 추측은 이렇다. 개인 돈이지만 우리나라의 부가 빠져나가는 걸 나쁘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더 이상하다. 그렇다면 해외여행, 외국 주식투자, 이민 모두 죄악시 해야 옳다.

이런 생각도 든다. "도박은 성실히 일해서 돈 버는 건전한 생각을 해친다". 맞는 말이지만 너무 옛날 얘기다. 근면성실이 중요하던 농경이나 산업화 시대에나 어울리는 생각 같다. 그리고 그게 걱정이라면 근로의욕을 꺾는 미친 집값이나 비트코인, 인플레이션 등을 더 규제해야 옳다.

나는 신정환을 좋아했다. 가수로서는 그저 그렇고 방송인으로서 그의 재기 발랄함과 재치, 천진무구함은 큰 웃음을 줬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는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방송계를 떠나 아직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좋아한다고는 해도 명예 회복을 주장할 정도로 팬이거나 덕후는 아니다. 연예계는 보이면 좋아하고 안 보이면 잊히는 세계다. 나도 오랫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의 자숙은 왜 이렇게 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팬이라기보다는 호기심 못 참는 오지라퍼로서 생각해 본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왜 신정환은 누리지 못하는가? 몇 차례 방송 복귀를 시도했으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방송사에 의해 무산되었다고 한다(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때 일을 다시 찾아보니 도박 행각이 들통났을 때 뎅기열에 걸렸다며 병원에 실려가는 쇼를 했더만. 솔직하게 인정을 안 하고 거짓말을 해 괘씸죄도 추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쇼로 먹고사는 사람이 쇼를 하는 게 나쁜가? 왜 우리는 광대에게 성인군자의 자세를 요구하는가?

자기 돈을 탕진해서 다시 벌어 보려는 재기의욕을 너무 가혹하게 꺾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상민은 망한 사업가에서 방송인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망한 갬블러는 재기하면 안 되나? 

신정환을 계속 자숙시킬 거면 강원랜드도 폐업시켜라. 그게 싫다면 불법인 성매매를 '적당히' 하도록 공창을 세워라. 불법인 폭행을 '건전하게 하도록' 매 맞는 공무원을 임용하라. 불법인 뇌물을 양성화하는 환곡 제도를 부활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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