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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Jun 28. 2023

킬러 문항 폐지, 킬러 항문 신설

항문을 갈고 닦을 능력을 검증하자


윤 대통령이 배우지(가르치지) 않은 문제는 수능에 내지 말라고 말했다.

수능 킬러문항 배제…여 "사교육 카르텔 차단"vs 야 "수험생 대혼란 초래" (뉴시스)


얼핏 북쪽의 조선중앙테레비 뉘우스 기사 같다.

"친애하는 위원장 동지께서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좀먹는 더럽게 어려운 문제를 발본색원하고 썩어빠진 사교육 무리를 숙청하라고 지시하시었~~따"


처음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설마 바쁘신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내지 말라고까지 했겠나 싶어서.. 그런데 교육부 관리가 경질되고 평가원장이 사임하는 등 온갖 난리가 이어지면서 아, 진지하시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대통령이 뭘 모르고 입을 함부로 놀려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다. 내 생각에는 뭘 모르고 한 말이 아니다. 아주 깊고 굳은 심지가 있어 그걸 드러낸 것이다.


그건 뭐냐? 바로 학력고사와 사범시험에 대한 향수다. 사실 학고는 창의력과는 거리가 멀다. 퀴즈와 비슷하다. 넓고 얄팍하게 알면 된다. 선택과목도 없이 단순해서 수석부터 꼴찌까지 줄세우기도 쉽다. 사시도 비슷하다.


모두가 알듯이 대통령은 학력고사에서 최상위 점수를 받아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고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가 되었다(비록 사시 9수라는 믿기 힘든 이력이 있지만.. 많은 면에서 대단한 분이다). 


가르친 것만 내자는 그의 주장은 우발적이기는커녕 매우 사려 깊은 발언이다. 한마디로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자기가 겪어보니 지금보다 그때가 합리적이었던 거다. 단순한 시험제도가 딱 어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뇌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우리가 국가원수로 뽑았으니 그만한 수고는 해야 한다). 그는 경험주의자다. 경험한 걸 신봉한다. 경험하지 않은 건 믿지 않는다. 자기를  경험으로 인사를 한다. 시험이라고 별반 다르겠는가?


이제 그의 단순함을 십분 감안하여 수능을 평가해 보자. 우선 만점이 몇 점인지 모르므로 나쁜 제도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섞여 있고 선택과목에 온갖 가중치에, 교차지원에, 대학별로 원하는 건 또 다 다르다. 이걸 단순명료한 대통령의 전두엽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잠시 대통령의 두뇌를 빌려 학력고사와 사시를 재평가해 보자. 380에 체력장 20 만점, 서울의대 395점, 고대법대 384점, 얼마나 멋진가? 사시 1차 합격 커트라인 몇 점, 사법연수원 졸업점수 몇 점까지 검사, 몇 점까지 판사 임용. 얼마나 깔끔한가?


윤통같은 경험주의자에게 이해 안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킬러 문항도 본인이 못 푸니까 없애라고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논란의 여지는 무조건 나쁘다. 법을 배운 사람답게 명료하고 단순한 게 최고다. 


죽이는 문제를 왜 국민들이 알아야 되는지 당최 이해가 안된다.


학력고사 시절에 우리나라는 가난했다. 사교육도 별로 없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복습을 철저히 했더니 만점이 나왔네"가 가능했던 시절이다. 나중에 사교육 억압을 위해 수석 인터뷰에서 조작이 점점 늘긴 했지만 말이다. 교과서만으로도 소위 '변별'이 가능했다.


현대사회는 더 복잡하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복습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심지어 돈도 안 된다. 뭔가 창의적인 다른 사고를 해야 잉여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수능과 킬러문항이 창의성을 키워주느냐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대통령이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아니다. 역사는 돌고 돌기 때문에, 유행도 돌고 돌기 때문에 급기야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가고 유행도 선도하는 것일 수 있다. 쌍팔년도에 산 나팔바지도 버리지 마시라!


그가 주창하는 단순한 미래에 대비하자. 그 시절에 통용되던 입시로 회귀한다면 우리도 그 시절의 상황에 맞추자. 정부도 이미 사교육과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나? 무엇보다도 가난해져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부를 축적했다면 저개발국가에 기부하자. 스마트폰 대신 굴렁쇠와 고무줄은 어떤가?


망치는 세상 모든 걸 못으로 본다. 우리가 뽑은 윤석열 망치는 못을 잘 찾는다. 수능이라는 못도 박든 뽑든 해결할 것이다. 그분의 진심을 의심하지 말자. 어눌해서 정교하게 묘사는 못하셔도 그가 꿈꾸는 세상은 분명히 있고 내가 대신 읽어드리리다.

킬러 문항이 없는 세상, 복잡함이 없고 단순해서 공정함이 도드라지는 세상, 퀴즈로 성적과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  얍씰한 일타강사가 없고 의자 위 엉덩이가 출세를 보장하는 세상, 항문에 힘쓰는 자가 명문대를 차지하는 세상, 9수 끝에도 용이 되는 세상, 외운 만큼 결과가 보장되는 사지선다의 심플무구한 세상, 조금 둔해도 우직한 망치들의 세상. 회개하라! 그런 세상이 가까웠느니라.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뭔가 헛다리를 짚은 느낌이다. 어쩌면 윤 대통령은 학력고사와 사법시험의 폐단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게 아닐까? 본인이 이것 밖에 안 된다는 점을 널리 알려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고자 하는 큰 뜻이 있지는 않을까?혼란에 빠진 건 고3들 뿐만이 아닌 거 같다.


P.S 그나저나 killer라는 말은 안 쓰면 안 될까요? 정유정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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