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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Aug 15. 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탓 릴레이

잼버리장보다 더한 진흙탕을 보면서

아이들은 크면서 서로 다툰다. 다투니까 아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갈등이 식거나 당사자들끼리 화해하길 기다리는 편이다. 문제는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다.


사태 파악에 나서면 이들은 어김없이 탓을 한다. 쟤가 먼저 그랬다, 오빠가 화를 돋웠다, 누나가 놀렸다 등의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함과 동시에 사태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이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핑계대기를 죄의 습성으로 본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저지른 후 보인 태도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에게 추궁당하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인간이 지니고 태어난 원죄이며 실존적 고민이라는 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요새 유행 중인 잼버리 파행 변명 폭탄 돌리기를 보면 아, 우리 정치가 인간 본능에 충실하구나 하는 기특함이 든다. 조직위는 행안부에, 행안부는 여가부에, 여가부는 전북도에, 전북도는 청와대에, 청와대는 전정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탓 릴레이는 역시 다투니까 정치인이다라고 느끼게 해 준다.


전북지사 “잼버리 허위사실 묵과 않을 것… 책임은 통감(국민일보)


이 와중에 내가 으뜸으로 치는 건 땅탓이다. 그러게 간척사업을 왜 해가지고... 가 핵심인데 그 창의성에 탄복하고 말았다. 폭염, 태풍 탓도 아니고 준비 부실 탓도 아니고 새만금 간척 탓이라니! 마치 월드컵 16강 실패를 두고 왜 축구공을 만들어 가지고...라는 뼈아픈 지적과도 같다.


땅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바다를 메운 땅은 당연히 진흙이다. 하늘도 돕지 않아 지난달 잦은 폭우로 새만금 잼버리장은 거의 우리나라 정치판 수준의 진흙탕이 되고 말았다. 동질감이 느껴졌는지 이때부터 정치인들이 잼버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꼴에 외국인들 앞에서 싸우는 건 부끄러웠나 보다. 끝나고 보자며 이를 갈더니 이제 물 만난 물고기(=진흙 만난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로 싸우는 아이들을 중재, 화해시키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나마 애들이니까, 내 새끼들이니까 싶은 마음에 평점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비슷하다. 우리 손으로 뽑은 것들이니까 어쩌겄어, 더 클 때까정 곱게 봐줘야지 하는 심정인 것이다. 정치의 생리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좀 편해진다. 너희 둘 다 잘못이야, 라며 양비론의 죽비를 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다만 싸울 때 좀 더 상상력과 창의성, 재치를 발휘하길 주문하고 싶다. 가령,


1. 잼버리장이 정치판을 닮아 진흙탕이 되었으니 머드 축제로 전환하자(보령시 긴급 투입)
2. 잼버리 대원들과 국회의원들을 맞교환하자. 대원은 국회로, 의원은 새만금으로!
3. 머드는 피부에도 좋고 우의를 다지는 데도 좋으니 빨간당 파란당, 비 오는 날 새만금에서 몸으로 한판 붙어라
4. 전 대통령이 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듯이 윤통은 문통을 포스트 잼버리 조직위원장에 앉혀 진흙탕 축제를 성료시켜라
5. 일론 머스크와 마크 주커버그 간 세기의 육체 대결을 새만금으로 유치하자. 링 말고 흙탕!
6. 청와대는 네탓 공방의 스케일을 키워라. 순살 아파트 부실의 원인은 전정권이 아니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제공한 것이다.
7. 잼버리를 통해 국제적으로 남긴 강렬한 인상은 정치인들 네덕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싸우니까 정치다. 그래도 더 세련되게 싸우길 바란다. 아니면 정말 새만금 진흙탕에 들어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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