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무료한 영화다. 무료함을찾아보니 없을 무(無), 귀 울릴 료(聊)를 쓴다. 귀를 울릴 소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도 눈과 귀에 남는 게 없다. 마음에만 묵직한 울림이 느껴진다.
감각의 매체인 영화가 몰(沒)감각으로 물들었다면 십중팔구 실패다. 이 영화,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화려한 장면이 없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카메라에 담는 나뭇잎 사이 햇살 정도... 청각적으로 귀길을 붙드는 대사도 없다. 조카와 자전거를 타고 나서 뭔가 대단한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라는 말만 외치며 멀어진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은 얼마나 영악한지 한번 자극에 적응하고 나면 더 센 걸 원한다. 임계치는 올라간다. 우리 두뇌는 같의 것의 반복을 싫어한다.변별만이 정보다. 그런데 용감한지 무모한지 영화에서 그의 일상은 계속 반복된다.청소 일을 쉬는 주말이 얼마나 반갑던지...
묘하게도 이 반복은 실망이 아니라 기대를 제공한다. 관객은 이 중년남자의 건조한 삶에 뭐든 피쳐링이 들어가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생긴다. 그런데 그마저도 별것 아니다. 같이 일하는 젊은 동료의 퇴사와 그 여자친구의 기습 뽀뽀, 가출한 조카와의 며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는 공중 화장실 빙고 쪽지, 단골 가게 여사장의 전남편 정도다.
이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줄여 극이 아닌 척하고, 단면을 보여줘 삶인 척한다. 나는 몇 사람과 의기투합해 독립 영화 상영관을 전세 내 봤다. 신청한 영화라 나갈 수도 없었지만 자의가 아닌 동기로 본 많은 이들은 중간에 상영관을 뛰쳐나갔을 수도 있겠다.
중년의 헛헛함은 이 밀도 낮은 영화에서 극대화된다. 자극이 적어 생각이 많아지는데 내 일상도, 내 루틴도 돌아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길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순간들을 적립하는 것 아닐까? 완벽한 날이 있어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로 완전한 충만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 '인생 참 지루하게도 산다'가 아니라 평범한 꾸역꾸역 속에 특별한 반짝반짝을 찾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짧고 자극적인 걸 많이 본 탓에 뭘 봤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옛날 카세트 테이프를 돌려 듣는 것 같은 새삼스러운 경험이었다. 이 영화 때문인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카세트 테이프 듣기가 유행이란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