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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Oct 15. 2024

퍼펙트 데이즈

하찮음이 귀찮음을 넘어설 때


《퍼펙트 데이즈》


동경의 어떤 청소부

자기 삶의 단면을 잘라

꾸미지도 숨기지도 않고 보여주는데

왜 자꾸 화면에 내가 보이나


돌고래 박쥐 지켜온

반향 감지 능력 버린 걸 알고

영화가 내 눈빛 반사해 묻는다

네 완벽한 날들은 어디에 있냐고




완벽하게 무료한 영화다. 무료함을 찾아보니 없을 무(無), 귀 울릴 료(聊)를 다. 귀를 울릴 소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도 눈과 귀에 남는 게 없다. 마음에만 묵직한 울림느껴진다.


감각의 매체인 영화가 몰(沒)감각으로 물들었다면 십중팔구 실패다.  영화,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화려한 장면이 없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카메라에 담는 나뭇잎 사이 햇살 정도... 청각적으로 귀길을 붙드는 대사도 없다. 조카와 자전거를 타고 나서 뭔가 대단한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라는 말만 외치며 멀어진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은 얼마나 영악한지 한번 자극에 적응하고 나면 더 센 걸 원한다. 임계치는 올라간다. 우리 두뇌는 같의 것의 반복을 싫어한다. 변별만이 정보다. 그런데 용감한지 무모한지 영화에서 그의 일상은 계속 반복된다. 청소 일을 쉬는 주말이 얼마나 반갑던지...


묘하게도 이 반복은 실망이 아니라 기대를 제공한다. 관객은 이 중년남자의 건조한 삶에 뭐든 피쳐링이 들어가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생긴다. 그런데 그마저도 별것 아니다. 같이 일하는 젊은 동료의 퇴사와 그 여자친구의 기습 뽀뽀, 가출한 조카와의 며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는 공중 화장실 빙고 쪽지, 단골 가게 여사장의 전남편 정도다.


이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줄여 극이 아닌 척하고, 단면을 보여줘 삶인 척한다. 나는 몇 사람과 의기투합해 독립 영화 상영관을 전세 내 봤다. 신청한 영화라 나갈 수도 없었지만 자의가 아닌 동기로 본 많은 이들은 중간에 상영관을 뛰쳐나갔을 수도 있겠다.


중년의 헛헛함은 이 밀도 낮은 영화에서 극대화된다. 자극이 적어 생각이 많아지는데 내 일상도, 내 루틴도 돌아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길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순간들을 적립하는 것 아닐까? 완벽한 날이 있어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로 완전한 충만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 '인생 참 지루하게도 산다'가 아니라 평범한 꾸역꾸역 속에 특별한 반짝반짝을 찾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짧고 자극적인 걸 많이 본 탓에 뭘 봤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옛날 카세트 테이프를 돌려 듣는 것 같은 새삼스러운 경험이었다. 이 영화 때문인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카세트 테이프 듣기가 유행이란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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