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의 혼란들이 배부름의 저주 같다. 가령, 온갖 거친 악플은 진짜 폭력의 실종이 불러온 것이다. 남과 북이 으르렁대는 것은 전쟁의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고, 침 튀기는 정치인들은 로베스피에르나 연산군이 피를 튀기지 않는 덕분이다.
요컨대 진짜 두려움을 느끼면 우리는 찍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 시끄러운 목소리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평화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면 조금 더 참을만하다.
관해난수(觀海難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뜻이다. 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작은 것조차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 쓰라고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쓴다고 고 신영복 선생이 화낼 것 같진 않다. 극단을 경험하면 모두가 침묵하거나 하나가 된다. 악인지 선인지 모르지만 이런 순환인 것이다. 재앙-공포-침묵-화합-극복
여기서 그치면 인간이 아니다. 재앙이 잦아들면 공포도 줄고 말도 하게 되면서 반목도 고개를 든다. 안정-욕심-갈등-폭력-굴복의 순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면 길몽을 꾸고 싶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을 통해 인간됨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다. 모든 재난 영화가 똑같은 클리셰다. 이 진부한 주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모든 재난 영화의 똑같은 숙제다.
이병헌이 연기를 잘했다. 컴퓨터 그래픽도 훌륭하다. 그러나 진부함을 깬 결정적인 요소는 각본이다. 같이 사는 것과 내가 안 죽는 것의 대결이 절묘하다. 폐허가 된 황금아파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평화롭게 팝콘을 씹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글을 쓰느라 영화 개요를 찾아보고 놀랐다. 평점이 8점대 초반인데 남자 관객의 평점이 여자보다 살짝 높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남자가 환장한다는 자동차 영화 '분노의 질주'마저 여자들 평가가 후한데... 남자의 별점이 여자보다 높은 다른 영화가 있으면 댓글 남겨주시길... 유독 이 영화가 남자들의 호평을 받는 이유도 아신다면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