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의 기준은 뭘까? 내가 지면 좋은 영화다. 이야기에 끌려다니며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면 좋은 영화다. 영화관을 나올 때, 리모컨을 누른 뒤에도 한 동안 정신이 몽롱하다면 좋은 영화다.
그것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굴복당하고 싶은 욕망이 사랑이다. 온통 상대로 물들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다. 널 위해 포기한 것들의 가짓수를 늘려 비굴하게 읍소하게 된다.지면서도 기분이 들뜨는 게임이 사랑이다.
이렇듯 좋은 영화와 모든 사랑은 같은 메커니즘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베스트 오퍼를 스릴러라고 하는데 (아닌 건 아니지만) 난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결말보다 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둔다면 말이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 이유도 과정에 있다. 강박과 결벽에 가까운 늙은 경매사가 묘령의 젊은 여자 의뢰인에게 빠져드는 과정이 줄거리다. 여자는 거짓말과 변명, 광장 공포증 핑계로 노인에게 조바심을 일으킨다. 정갈하고 완벽주의적이던 노인은 점점 흐트러진다.
여자가 십수 년 동안 광장 공포증을 앓으며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노인은 엄청난 연민을 느낀다. 이 과정을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반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당신은 그(녀)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노인의 직업이 저명한 고미술 경매사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베스트 오퍼인가 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차지하기 위해 내 것을 걸고 (쟁취)설렘과 (거절)공포 속에서 제안(응찰)하는 과정이다. 가꾸는 건 다른 차원이지만..
경매를 이끄는 노인의 태도와 현장 분위기는 전개 과정에 따라 다르다. 영화 도입부에는 절도 있고 엄격하며 열기가 가득하다. 여자가 사라져 엉망이 된 시점에서 그가 진행하는 경매는 우스꽝스럽고 한심하다. 반전 직전의 은퇴 경매장은 싸늘하고 호응이 없다. 사랑에 빠지기 전, 빠진 후, 잃기 직전의 우리 모습이다.
복선으로 깔린 인물들이 결말에 이르러서야 아, 하고 감탄을 뿜게 하는데 그 반전이 놀랍다. 평생 쌓아왔던 자아가 무너지는 희열과는 정반대 쪽에서 터지는 충격이다. 내가 빠진 사랑도 아니면서 몰입하게 된다.
노인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은교>와 닮았다. 강력한 사랑의 힘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어떤 연령이든 매한가지다. 질투에 휩싸이고 평정심을 잃고 나머지 모두가 하찮게 되는 것이다.
다시 되감아 보고 싶은 영화다. 두 번째는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해설-가령 알랭 드 보통-과 함께 감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