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 직장인 0씨
어느날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너무 힘들어.”
평소와 다른 말투와 창백한 아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제 목 뒤 핏기가 쏴아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과 상황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1순위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제 삶이 1순위였습니다. 회사, 커뮤니티, 강연, 글쓰기 등 하고 싶은건 하나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걸 한 뒤 남는 시간에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며 그것을 희생과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날 바로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회사 육아휴직을 통보했습니다.
“여러분, 빛나는 남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스스로 빛나는 삶을 사십시오.”
청년을 위한 강연에서 했던 말입니다. 회사를 다니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강연을 하며 남들에게 멋진 말을 하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타인을 부러워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잘 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커뮤니티에서도 주변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며 내 삶은 완벽하다 여겼습니다.
사람들의 동경 어린 눈빛이 좋았습니다. 그 감정에 취해 살았습니다. 스스로 가족을 우선하고,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고 달콤한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은 아내의 “나 너무 힘들어” 한마디 말에 깨졌습니다.
저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글을 쓰고 강연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 자기계발하며 나를 성장시키고, 회사에서 진급을 위해 노력하고 말이죠. 새벽이고 밤이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착각을 했습니다.지금 돌아보니 저만을 위해 열심히 살았더군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퇴근하면 집에가서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보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나가나기도 했죠.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것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레알 같이 남는 시간을 가족에게 투자했고, 그 투자한 시간 만큼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의 우선순위는 가족이라는 착각을 했던거죠. 그래서 ‘저는 가족이 1순위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가족을 위한 삶을 살지도 않는데 말이죠.
제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TV에 출연하고, 인터뷰를 하고, 강연을 다니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혼자 육아를 했습니다. 게다가 사업체를 추가로 두 개나 운영했습니다.(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다 탈이 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것입니다. 아내가 저에게 요즘 많이 힘들다고 자주 말하셨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한계에 도달한거죠. 혼자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곪아갔습니다.
이대로는 정말 큰일 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가족이 우선이라면, 제가 아끼는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가진걸 내려놓기가 정말 무서웠습니다. 커뮤니티를 그만둘까? 직장 커리어를 내려놓을까? 강연 등 외부 활동을 모두 중단할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평소 죽음에 관하여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내가 죽을때 무엇을 후회할까? 라고 말이죠.
1안: 회사에서 한 달 전 차장에 진급했으니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인정받는다.
2안: 회사 커리어, 남들의 시선, 나의 걱정을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간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다.
답은 명확했습니다. 2안이었습니다. 결정은 정말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택하고 나니 별것 아니더라고요. 참 신기했습니다. 아내가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들은 다음날 바로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을 위한 강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행복과 삶이란 마트에서 카트 없이 장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트에는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있죠? 내 삶에 행복과 기회도 다양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가질 수 있을까요? 많이 가지려고 할 수 록 무겁겠죠? 내가 감내할 수 있으면 이것저것 다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감당하셔야겠죠? 감당할 수 없다면 여러분이 들 수 있는 만큼만 들면 됩니다.”
나의 삶과 행복을 위해 들 수 있는 만큼만 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서,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어서, 이해해주는 선후배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와 큰 탈 없이 잘 자라주는 아이가 가장 감사하네요.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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