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벽을 넘어 완성되는 투자 유치
"대표님, 다음에 뵐게요."
느껴진다. 다음은 없다.
투자사는 좀처럼 거절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왜냐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만난 그 대표가 유니콘이 될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런 희망회로를 돌리지는 않는다.)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걸 몰랐다.
첫 투자자를 만났을 때 나는 꽤 자신 있었다.
밤새 다듬은 논리 정연한 피치덱이 있었고, 시장 분석표와 재무 시뮬레이션은 번쩍였다. 솔직히 ‘이 정도면 설득할 수 있겠지’ 했다. 하지만 콜드콜에서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메일 주시면 검토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연락은 좀처럼 안 왔다. 회신이라도 주신 투자사 심사역님들은 참 고마운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세상을 바꾸겠다고 메일과 전화를 보내는 대표가 하루에도 수십 명일 테니까. 그들도 사람이니까.
"검토 결과 저희랑 규모가 좀 안 맞는 것 같네요. 다음에 뵐게요"
그렇게 준비했는데, 실망감이 컸다. 아직 시작이니까.
이후에도 수차례 같은 경험이 반복됐다. 투자자는 냉정했다. 한 시간의 대화 끝에 남는 건 ‘우리가 부족하다’는 결론뿐이었다. 마치 내 아이디어뿐 아니라 내 자신이 해부대에 올라간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엔 좌절이 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절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단단해졌다. 까이는 이유가 전부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시장성을, 또 어떤 이는 실행력을 집요하게 물었다. 결국 투자자들의 피드백은 우리가 채워야 할 ‘리스트’였다. 거절은 상처가 아니라 가이드였다.
거절 당해도 쓰러지지 않고, 보완하고 성장해서 다시 만나 투자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100번을 거절 당해도, 1번 성공한다면, 그것을 성공이라 평가한다. 99번의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까이면 까일 수록 늘어난 건 오히려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근육이었다.
지난 창업에서 투자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투자를 받아야만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 투자금은 산소통이 아니라 증폭기다. 불씨가 살아 있어야만 불길을 키워준다. 제품이나 사업이 시장 검증을 확실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만 부으면 타오르기는커녕 꺼져버린다.
그래서 이번 창업에서는 방향을 바꿨다. 투자에 목매지 않기로. 작은 매출이라도 스스로 만들어내고,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흔히 말하는 ‘부트스트래핑’이다. 남의 돈에 기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버티는 것. 그래야 투자도 의미를 가진다.
돌이켜보면 첫 투자유치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거절당할수록 강해졌고, 버틸수록 더 독해졌다. 시장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교훈, 그것이 첫 투자유치가 남긴 진짜 성과였다.
투자유치는 창업가에게 먼저 거절의 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벽에 부딪히며 얻는 건 두 가지다.
거절의 이유는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우리가 보완할 체크리스트다.
투자자금은 연명을 위한 산소통이 아니라 사업의 증폭기다.
살아남는 힘을 길르는 것, 그것이 투자 유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