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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12. 2024

rest


Colorpencils, watercolor on paper


재희는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조용한 곳에서도 이미 재희의 귀는 많이 지쳐있었고 피로해져 있었다. 작은 소음에도 마음이 요동쳤다. 재희의 마음은 얇고 예민한 바이올린 줄 같아서 작은 것들에도 진동하고 흔들리곤 했다. 재희는 어릴 적 그의 엄마와 갔던 바다에서 하얀 조개를 주워 흙을 털어내고 바닷물에 씻어 마디가 두꺼워진 엄마의 손에 쥐어주던 그때를 기억했다. 모든 게 흐릿했지만 엄마의 미소와 행복하던 자신만은 또렷했다. 재희의 엄마는 재희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일하는 미용실에서도 바이올린 음악이 늘 흘러나오곤 했다. 그래서 미용실을 오는 손님들은 그녀를 '고상하고 싶어 하는 여자'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종종 그 미용실에 가기를 자랑하듯 말했다. 바이올린이 흘러나오던 그 미용실은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았고 재희와 엄마가 살던 104호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104호의 이삿날이 되었다. 재희는 이삿날을 내내 두려워했다. 시끄럽고 복잡한 것들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사는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104호에 이사 오는 가족을 만났다. 8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들과 흰머리가 희끗보이는 아버지였다. 어린 아들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다. 귀중품을 다루듯 양손으로 바이올린이 든 가방을 안고 인사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재희에게 인사를 한 후 시루떡 한 덩이를 건넸다. "가시는 곳에서도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남자가 말했다. 재희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바이올린 가방을 열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아저씨 제가 가서도 잘 지내시라고 행운의 연주해드릴게요!"

재희의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10년이 넘게 바이올린연주는 듣지 않았다. 아이의 서툰 바이올린 연주소리가 1층 로비에 울렸다. 재희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고 처음 연주한 곡이었다.  재희의 마음속 현(絃)이 천천히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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