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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Mar 04. 2021

우리 엄마의가족

아득하고 가까운


왜 사람은 현재를 살아내면서도  옛 일을 떠올리고 또 그것을 놓지 못하고 안고 살아가는 것일까.

왜 아득하게 바랜 기억들을 끌어안고 놓기를 반복하는 걸까. 엄마는 도대체 어디까지의 옛 일들을 다 끌어안고 살았던 걸까.

우리 엄마 박선화 씨는 가끔 초점 없이 멍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자주 짓곤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주 아이였을 때에는 그런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조금씩 자라 엄마의 키와 조금은 비슷해져 갈 무렵부터 가끔 그런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냐며 물어보았다. 그땐 순수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때의 난 그저 엄마가 멍하니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물음에도 싱겁게 대답만 돌아왔다.

여러 번의 연애와 인간관계로 사람이 지나가고 세상이 생각보다 더  차가운 곳이라는 것에 긴장할 나이가 되니 슬슬 나는 멍한 엄마의 눈동자가 불안해졌다. 마치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엄마의 두 눈 속을 보고 있자면  엄마를 영영 놓쳐버릴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 건 단순한 나의 예민한 성격 때문만이 아닌 다른 이유도 한몫을 했다.


어느샌가부터 엄마는 내가 엄마, 엄마! 하고 몇 번을 불러야 그제야  멍한 눈동자를 천천히  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마치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기라고 하는 사람처럼

" 뭘 그렇게 아기같이 불러~" 하면서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곤 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웃는 엄마의 표정에 하나도 안심이 되지가 않았다. 얼핏 보게 되는 엄마의 표정들이 한 번도 쓸쓸하게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런 표정을 보는 날들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나 불안했고 싫었다. 나는 그런 표정이 생기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얼추  다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그 표정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 했다. 그 쓸쓸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다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환자의 얼굴을 보는 의사의 절망감이 내가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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