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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Feb 27. 2021

오후 5시

지켜내는 것


1.

오래된 연애가 끝이 났다.

나 헤어졌어라는 말은 정말 많이 했다.

정말 헤어지고 나니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당연히 올라가는 것처럼 헤어짐도 그렇게 그저 상영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2.

헤어지고 난 후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이 주말 이어서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왜 이제야 끝낼 수 있었던 걸까.

 분명 나는 충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뛰다 몇 번이나 넘어져 상처가 났는데도 그게 마치 훈장이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내 상처를 돌보지 않았다. 완벽한 사람이 어딨어라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감쌌다.



3.

욕을 듣고 이제는 정말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에 헤어짐을  먼저 꺼냈다.

나를 향한 욕설을 내 두 귀로 들었는데도 욕을 할 만한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새삼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연애에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냐며 당장 헤어져야지 뭐 하고 있냐며 답답해했는데 우습게도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내가 지켜내려고 한 건 나였을까 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오래된 관계 그 자체였을까.



4.

난 나를 지켜내고 싶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완벽히 두 사람의 마음의 크기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차이가 조금 더 났던 것이다.

육감적으로 알았다. 날 많이 사랑하지는 않는구나.

얘기도 여러 번 했다.

"넌 나만큼 날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널 왜 안 좋아해~"라는 말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었고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외면했던 진실이 결국엔 더 큰 화살이 됐다.

진실을 부정하려고 그 사람의 장점들을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모으는 것처럼 열심히도 모았다.


5.

사랑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큰 사랑을 바라서 일수도 있어, 내가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다 과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 사람이 주는 값싼 마음에 값진 내 마음 값을 내버렸다.

나는 날 정말 지키고 싶었고 그저 그 방법의 방향이 조금 엇나갔던 것뿐이다.


6.

마음을 쏟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너 자신을 더 사랑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이다. 그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단지 당장 인정해야 할 진실로부터 자기를 강하게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정말 진심이었기에 먼지 털듯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7.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만큼이나 비슷하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당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리는 놀라운 힘을 가졌고 당신은 그것을 기쁘게 해왔던 멋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싸구려라고 생각이 들 때는 당신이 너무 멋진 사람이라 그런 마음도 값지게 사들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자.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멋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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