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리담 Nov 05.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독모#1

정말 오랜만에 진행한 독서모임. 1년 만이던가? 다들 말하는 게 어색해서 허공을 향한 시선을 더듬대며 단어를 찾아갔다. 그래도 좋은 몸풀이 었던 이 책. 호불호가 많아서 조금 망설이면서 고른 책이었지만, 다들 올 해의 책이라고 해 줄 만큼 책 자체는 재미있었다. 나는 이 책을 지금 네 번째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마음에 남는 것이 다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목적의식. 목적의식은 인간의 행동을 얼마나 바꾸어낼 수 있는가, 인간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가.이다. 아마 목적 없이 게으르던 내가 최근 새로운 목적을 살며시 가져보려고 하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읽을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 만나서 반갑다!



--발제문-- (너무 오랜만에 써서, 쓰고 나서 내가 다시 읽어봐도 얄팍하고 깊이 없는 글이다ㅠ)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나누고 싶은 얘기도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찰하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숨 쉬는 것도 잊도록 우리를 그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니. 우생학, 그릿, 허무주의, 운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작가의 필력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발제문도, 오늘의 이야기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기에, 작가의 세계를 지배했던 키워드인 카오스에 대해, 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우리가 보는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깨닫는 것은 우리는 세상의 티끌이라는 것. 우리의 세상의 지배자는 카오스라는 사실에 이 책의 인물들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거대한 혼돈에 굴복하지만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화자와 혼돈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좋을 대로 크고 대범하게 사는 아빠, 그리고 의미 없는 삶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리고 애나까지, 네 명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간다.

데이비드는 다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한평생 자연의 질서라는 커다란 목적을 향했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목표를 이루어갔다.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덕분에 그는 의심하지 않고 나아갈 수가 있었다. 대자연이 삶의 노력의 결과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을 때도 그는 바늘과 실로 무장하고 다시 나아간다. 그는 겸손을 제창하고 기만을 경멸했지만 막상 자신을 사다리 맨 꼭대기에 올려두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다른 다른 생명체-부적합자, 사다리 아래의 모든 것들-과 달리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카오스, 즉 자신이 세상의 단지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느낌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

작가는 사랑과 안정감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여러 말과 행동들이 그녀를 카오스에 지배당하게 했다. 그녀가 카오스에서 해방될 때는 사랑을 찾았을 때. 그녀를 온전히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을 찾았을 때다. 그때에만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사소함과 의미 없음에 영영 싸워온 두 사람과 달리 이를 받아들이고 살아온 사람도 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 티끌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를 원하는 대로-실험쥐를 구워 먹고 물이 보이면 언제든지 배치기 다이빙을 하는- 살게 했다. 애나가 삶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경이 그 자체다. 사회가 나를 “가치 없음”으로 낙인찍었을 때, 그 표식을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이유 없이 속한 곳에서 공식적으로 거부당한다는 것, 어떻게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작가가 한 질문을 나도 고스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메리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가 없었다면 더욱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여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희미하고 푸른 점에 사는 티끌 같은 우리. 칼 세이건 또한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소중히 했다. 그의 가족은 서로에게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모두가 보잘것없는 세상이지만 나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지속하게 한다. 자연의 무작위성으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우리이지만-그래서 지워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그런대로 주어진 삶에서 다정함과 따스함으로 무장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드라 오가 정호연에게 간단하지만(핵심적으로) 해 준 말이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 나는 그 말을 종종 꺼내어 본다. 그저 나와 주변을 잘 보살피고 잘 먹는 것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Just be kind, eat, take care of yourself. That’s ultimately all it boils down to.


질문

/1.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지지 않았다. 직관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였는지, 혹은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2.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카프카가 말한 “파괴되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을까? 어떤 욕구와 가장 비슷한 모양으로 있을까?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것.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

/3.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틍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긍정적 착각)…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로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좌절을 겪은 뒤 낙담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능력,…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 그는 어떤 거부나 모욕이나 실패도 받아들여 그것을 마치 마법처럼 칭찬으로 바꿀 수 있다.  (141~145p)

이런 자질을 요즘의 부모들은 원한다. 의심하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질. 이는 우리의 에고에 방패막이되어준다. 요즘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에고가 커지기를(부풀려지든 커지든) 바라며 교육한다. 이 아이들이 맞이하는 세상은 어떨까? 장밋빛 자기기만으로 필터 된 세상을 살아갈까?

/6.

온순하고 음울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남자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지나다니다가, 어느새 그 목적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목적, 키워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충만하다. 사람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며 사사로운 감정에 덜 휘말리게 한다. 종교라던가 깊은 취미라던가.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삶은 어떨까?

/5.

카르마를 믿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불멸 - 밀란쿤데라. 모방과 존재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