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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10. 2021

불멸 - 밀란쿤데라. 모방과 존재의 무게

우리는 한 없이 모방하고 모방당하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는 가볍다.

발제문

우리는 독창적이고 유일하기를 바라며 자아를 가꾼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지 이미지로만 기억되며 이 이미지조차 끊임 없이 모방당하고 모방하기 떄문에 우리의 존재는 한 없이 가벼울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이 말을 하고자 한다고 느꼈다.

자아가 얼마나 훌륭한가는 불멸과 무관하다. "이미지를 얼마나 널리 공표했는가"만이 널리 알려지는 데 기여한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떠벌린다. 떠벌리지 않으면 이미지는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기 마련이다. 베토벤은 자신이 고독한 반항가로 남겨질 지 상상이나 했을까. 이미지는 떠벌려지고 과시되는 것인 반면 우리 자아는 내밀하고 세상에 널리 공표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기 이미지 외에 다른 무엇도 아냐... 우리 이미지란 단순한 겉모습일 뿐이고 그 뒤에 세상 시선과는 무관한 우리자아의 실체가 숨어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천진한 환상이야...그런데 더욱 끔찍한 사실은 자네가 자네 이미지의 주인이 아니라는 거지... " 205pg "아마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타인들의 신경에 거슬리는지, 우리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호감을 주며, 어떤 점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미지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미스터리인 것이다."


우리 이미지는 모방으로 이루어졌고, 곧 존재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의 그 손동작은 아녜스를 탄생시켰지만, 책의 끝마침 쯤에 로라는 그것을 완벽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개인의 이미지적 특징에서 대체불가능한 것은 없는 것이다. 슬픔의 상징이 된 검은 선글라스도 완전히 로라의 것이 되었다. 아녜스는 그 동작들이 독창적이지 않게 된 순간 버렸고 로라는 그것을 자신의 이미지에 덧붙였다. 어찌 보면 그 손동작, 그 선글라스는 누구의 것도 아니기도 하다. 그것을 원하는 누구나 시간을 들여 가질 수 있다. (폴이 랭보의 이미지를 지지하여 오토바이를 탄 것처럼).  이 점은 루벤스의 "아랍전화놀이"시기에도 보여진다. 독창적이고 소중한 이야기도 알고 보면 모방하고 습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 얼굴들이 날이 갈수록 서로 닮아 가느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자아의 독창성을 확인하고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유일성을 확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아의 유일성을 가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덧셈 법과 뺄셈 법이다. 아녜쓰는 자신의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자아에서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을 모두 추려냈다. 로라의 방법은 정확히 그 반대다. 자신의 자아를 좀 더 잘보이게 하고 좀더 파악하기 쉽게 하고 좀ㄷ 더 두텁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끊임 없이 새로운 것을 덧붙여 그것에 자아를 동화했다.


중요한 것은 수 많은 이미지의 퍼즐 중 어떤 것을 끼워 맞추어 존재를 만들어 가느냐인 것 같다. 어떤 이미지를 어떤 조각과 어떻게 끼워맞추느냐가 나를 규정할 것이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나의 자아를 잘 안다는 것보다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인지하는 지"를 잘 아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읽었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잠깐 친구로 등장했던 인물이 생각난다. 그녀는 어릴 적에는 덧니를 수줍어해서 손으로 가리고 웃었는데, 원숙해진 그녀는 거기서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지를 잘 알고 자신이 이미 가지고(혹은 원하고) 있던 청초한 부잣집마나님 이미지에 끼워넣어 매력포인트로 이용하고 있었다.   

  314pg. "호모 센티멘탈리스트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가치로 정립한 사람으로 정의해야 한다. 감정이 하나의 가치로 간주되면 그 때부터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느끼고 싶어 하며 또한 우리 모두가 우리의 가치들에 긍지를 느끼는 만큼 우리의 감정들을 전시하고자 하는 유혹이 커진다.... (316pg) 정의 내리자면, 감정이란 우리 몰래, 그리고 대개는 우리의 육체를 거스르면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순간부터 감정은 더는 감정이 아니라 모방이요 감정의 과시다."


우리의 자아의 안녕을 위해서 자아 그대로를 알아줄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감정을 느끼는 그대로 내뱉고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 존재의 덧셈과 뺄셈 사이에서 자아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듣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로서 살 수 있다. 로라처럼 부풀릴 필요도, 아녜스처럼 뺄 필요도 없다. 한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이미지로 생각하는 지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스스로의 자아에게 솔직해져서 자아 그대로를 자유롭게 이미지로 표혀할 수 있을 때 가장 평온하고 우리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질문   

     [구성] 이 책과 같은 구성은 처음 봐요! 작가는 작중에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다양한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설명을 했던 것 같은데요(정확히 기억이 안 남) 이런 책의 전개를 읽는 데 어렵지는 않았나요?


     [자아] 제 눈에는 로라의 모습은 성가시고 아녜스는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그녀들의 속내를 모두 다 읽을 수 있어서 그런 걸까요?) 실상 그녀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텐데요. 실제 자아와 가장 많이 오해받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세요? 

    156pg. "언니! 인생은 한 번뿐이야! .. 그래도 뭔가 우리 뒤에 남겨둬야 하지 않겠어!" "우리 뒤에 뭔가 남겨둔다고?" 놀란 듯한 회의적인 어조로 아녜스가 되물었다.


     [이미지] 내가 되고 싶은 이미지가 있나요?


     [아랍전화놀이] 우리의 삶은 모방의 연속입니다. SNS에서 보았던 예쁜 것, 웃긴 것을 모방하고 이야기합니다. 더 빨리 많이 모방하면 트렌디한 사람, 모방하지 않으면 마이웨이가 되는 세상인 것 같아요. 지난 번에도 언뜻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주어진 것들 중 어떤 것을 모방하길 선택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중적으로 세상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저를 보면 만족스럽기도 하구요. 모방과 자아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아요


     [불멸의 이미지]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이미지는 웃음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웃음은 모방의 가장 선한 형태인 것 같아요. 가벼운 농담과 웃음은 편하고 즐거운 사회생활을 만들어 줍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원한 이미지가 웃음일까요? 지금 우리 시대에 다른 불멸힐 이미지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516pg) "류티스트는 아름다움이 웃지 않는 세계, 이미 끝장난 세계의 사람이었다...(517pg) 그러나 미국 대통령들은 웃음의 민주적 발작 뒤에 숨어 영원을 향해 떠나고 있다"



작년 언젠가 썼던 독서모임 발제문. 내가 좋아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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