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리담 Nov 09. 2022

스스로가 지긋지긋한 순간

개기월식과 랍스터 브이로그

밤 9시,

핸드폰 스크린에만 고정되어 있던 눈을 들어 시계를 본다. 이제는 화들짝 놀라지도 않는다. 휴우- 하며 몸을 일으킨다. 지금이라도 운동가지 않으면 이대로 하루가 끝나게 되니까. 씻으러 간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몸을 일으켜 밍기적밍기적 운동복으로 갈아입다가 아홉시 반이 다 되어가는 걸 보고 후다닥 집을 나선다.

내 기억 속 마지막 시간은 7시였는데 어느 새 9시가 되었다. 빨간 동그라미 속에 하얀 네모가 있는 그 버튼, 유투브의 세계로  들어가면, 언제나처럼 이렇게 되어 버린다.


엄청 많은 영상을 봤지만 대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심 없는 먹방을 보고 어떤 연예인의 유창하다는 영어 인터뷰를 본 것 같다. 여덟시 쯤이던가, 오늘 개기월식이라 빨간 달이 뜨니 지금 보라는 친구의 카톡이 뜬다. 그렇구나- 하며 무성의한 답장을 하고는 계속 유투브를 본다. 아아 재밌는 것도 참 없다. 더 더 스크롤을 내려 수산시장에서 랍스터를 사다 유리수족관에 넣는 영상을 봤다. 낯선 곳에서 긴장한 랍스터가 오징어도 새우도 먹지 않아 걱정하는 이들의 영상을 본다. 영상이 끝나자 엄지를 내리고 또 내린다. 이제는 정말정말 볼 게 없다. 갈수록 클릭하고 싶은 것조차 없지만 스크롤을 계속한다. 휴 이제는 슬슬 일어나야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홉 시.


순-삭. 순삭이라는 말은 누가 지었을까? 이렇게 어감이 딱 맞을수가 없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사라져버린 이런 때에 딱 어울리는 어감이다. 황당한 나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 단어. 소중한 저녁 두어 시간을 시간을 유투브로 보다가 다 써버리는 나자신이 너무 야속하다.


개기월식을 봤냐는 친구의 카톡에 뒤늦게 답장한다. 이제 보러 가-

헬스장 가는 길 올려다 본 하늘의 빨간 달은 이미 반쯤 사라진 지 오래다. 달은 이미 반바퀴쯤 돌아서 태양빛을 받고 다시금 영롱하게 빛난다. 빨간 달은 이미 사라졌구나. 오늘따라 현타가 세게 온다.

멋진 빨간 달. 나는 이 때 랍스터 키우는 브이로그를 보고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나를 하소연했다. 매일가은 이 진절머리나는 패턴에 대해 쏟아냈다. 그러나 친구는 이제 이런 내가 지겨워진지 오래다. 벌써 몇 년 짼지 모르겠다고 한다. 영혼 없이 그래, 그래 하는 대답을 들으며 아쉬운 마음에 하늘 한 번, 바닥 한 번 보며 헬스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도 운동할 시간이 적어서 후다닥 두어 개 하고 얼른 씻고 돌아온다.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일이다. 매번 현타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번 일어난다.

SNS를 너무나도 많이 보는 나머지 인스타그램은 지웠다 다시 깔았다 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블로그, 당근마켓 등 흥미로운 것이 별로 없는 앱에도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사소한 자극이 없으면 못 견디는 나는 아무래도 도파민 중독같다. 매번 유투브만은 안돼. 유투브는 필요악이야! 라고 외쳤던 나지만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저 폴더 뒷쪽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유투브를 찾아 삭제 버튼을 누른다. 유투브 한동안 안녕이다. 언제 다시 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퇴근 후에 이렇게 앱을 보는 이유는 뭘까? 특히 야근을 하거나 일하고 지친 날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뇌의 힘, 즉 전두엽의 이성적인 자제력을 다 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지속되면서 습관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퇴근을 하고 나면 이상한 보상심리가 든다.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뇌가 지금 지쳤으니까 재밌는 걸 보면서 뇌를 회복해야지,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사실상 유투브가 내 뇌를 쉬게 하지는 않는다. 끊임 없이 뭘 볼지 생각하고 새로운 자극이 계속 들어오는 것이 절대 뇌를 온전히 쉬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진정으로 쉬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명상을 할 때,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웃음을 터뜨릴 때. 이 때야말로 진짜 뇌가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푸하 하고 웃음을 터트릴 때는 뇌에서 탁 하는 느낌이 난다. 어떤 물질이 뇌에서 분비되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멍 때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정말 좋다더라.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일테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못 한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해서 뭐라도 해야 하니 유투브를 켜는 내가 한심하다. 뭐라도 해야 하고 끊임 없이 생각이 많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못 견뎌 유투브에 다시 손가락을 뻗는다. 뭐라도 새로운 자극을 들게 하려고.


오늘부터 나는 저녁을 다시 의미 있게 쓰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오늘은 마치면 다시 명상을 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재미있는 책을 읽어 봐야지. 그래도 다시 앱에서 자극을 찾는다면.. 핸드폰을 없애볼까?


개기월식이 끝나가는 늦은 밤 저녁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엄마가 세상을 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