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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an 24. 2023

퇴사하는 매니저와의 마지막 원온원

우선순위 정하는 법

그녀는 6개월 간 내 매니저였다. 일을 잘했고 평이 참 좋았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일한 터라 배경지식도 많았고 무엇이든 그녀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왔다. 무엇보다 MBTI 기준 T천국인 이곳에서 몇 안 되는 F성향의 사람이나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그렇게 새로운 이제약 적응을 했다 싶을 때쯤 그녀는 갑자기 떠난다고 공유해 왔다. 그리고 그녀의 일은 고스란히 내 일이 되었다. 막막하지만 가시성이 없는 내 기존의 일보다 그녀의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소통하는 법도 배우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떠나는 그녀에게 내가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우선순위 정하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내 짬바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특히나 이렇게 백그라운드가 없는 도메인에서는 더욱 그랬다.


회사에서 주력하는 상품군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슈라면 당장 고쳐야 한다. 또한 리더십에서 내려온 것도 항상 우선순위가 높다. 이것처럼 명확하지 않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것과 내가 요청한 일감이 무엇이 더 중요한 지 company wide perspective로 먼저 보아야 한다. 그들을 설득해서 움직여야 한다. 효과를 너무 겸손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매출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가정도 같이 넣어 말하는 것도 좋다. 일단 고객에게 미치는, 회사에 미치는 비즈니스 임팩트가 확실해야만 사람들은 움직인다. 그리고 고마운 점은 사람들이 임팩트만 확실하면 다들 성심성의껏 움직여준다는 것이다. 내가 드라이브한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부족함이 가려질 정도로 잘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무기는 항상 데이 터렷다. 그렇지만 그리고도 모르겠으면 혼자 싸매지 말고 매니저한테 에스컬레이션 하자. 그 어떤 매니저라도 혼자 헤매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매니저의 일마저 다 받게 되어서 굉장히 할 일이 많다. 이럴 때는 다 끌어안을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것 중 임팩트 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괜히 반쯤 발 걸쳐있는 것 갔다가 멘털만 털리고 나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이 회사의 단점이자 장점은 R&R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뭐든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긴다. 내 분야가 아니라도,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다 시킨다. 이런 것까지?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만큼 그릇이 커지기도 한다. 내 역할 밖을 보는 만큼 시야를 더 넓게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요청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자. 사람들마다의 성향이 있다. 일을 요청할 때는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방식으로 해 주자. 나는 항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해야 하는 입장이다. 개발자들은 대부분 티켓을 선호한다. 자기 이름으로 놓인 티켓은 어떻게든 해치우려 하기 때문이다. 채널에서 이슈가 되었을 때는 채널에서 백번 얘기하기보다 티켓을 따서 전달하자. 위키가 가장 좋지만 항상 위키를 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티켓으로라도 관리하자. 티켓으로 생산성을 관리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메일이 좋다. 메일 또한 이력을 남기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다른 PO분들, 다른 쪽 개발자분들에게 요청드릴 때는 메일이 좋다.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있다. 그 방식에 맞추어주자.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시간 날 때 위키로 정리해 두자. 위키로 한 페이지에 정리해 두는 게 내가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리더십에서 뭔가 요청이 오면 다들 이거 빨리 해야 해라는 흥분한 상태로 온다. 나도 덩달아 흥분해서 경주마처럼 뒤도 안 돌아보기 마련인데, 이럴 때 잠시라도 생각을 하자. 이때 커트할 줄 알아야 한다. 커트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일단 데이터를 까봐야 한다. 무조건 다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 데이터의 유형을 구분하고 BA와 직접 데이터를 같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는 PO는 메트릭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뿐만 아니라 PO들과 얘기하다 보면 "성과도 없는 것"에 끌려다닌다거나 "성과도 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 라는 속얘기를 듣는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차 싶다. 성과도 없는 일에 끌려다니는 것은 막상 내가 아닌가. 성과도 없는 일을 하면서 그저 누군가가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어 왔던 것이 나였다. 내가 필요한 모든 자잘한 일에 아등바등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끼지 않아도 될 일에 너무 끼어들어간 건 아닌지,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일에 그저 껴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효율적인 리소스분배가 되지 않았다. 

성과가 있는 일에 써야 할 리소스도 부족하다 보니(PO도 개발도) 성과도 없는 일, 보이지 않는 일, 남의 사업부의 일에 시큰둥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같은 맥락으로 나도 성과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성과 있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일은 일대로 하고 가시성은 가시성대로 낮아지게 되어있다. 


우선순위에 대해서 나는 아직 배울 것도 생각할 것도 많다. 그렇지만 몇 달 뒤 이 글을 읽고 아 이런 고민을 했었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내가 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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