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R을 도입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
OKR(objective by key result), 구글의 성과관리 방식으로 유명해져서 이제는 모든 스타트업이, 나아가 거의 모든 IT필드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목표관리방식이에요. 말 그대로 핵심성과를 기준으로 목표를 관리하는 것이지요. 많은 회사들이 OKR을 이상적인 성과관리 방식으로 여기고 빠르게 옮겨오고 있어요.
저 또한 책으로만 봤던 OKR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랬어요. 이전회사의 성과측정방식이었던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는 저의 자율도가 떨어질 뿐더러 성과를 명확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1년 전 지금 회사로 이직하면서 처음으로 OKR을 기준으로 목표를 세워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접한 OKR은 인상적이었고,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반에 OKR을 짜고 이를 달성하려 노력하는 동안 OKR이 KPI를 대체할 것이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5번의 OKR을 세팅하면서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어느 방식도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는 것을요.
처음 OKR 세팅을 맞닥뜨렸을 때 저는 벙쪘어요. 이렇게 많은 시간을 목표 설정에 들이다니요. (물론 목표설정 기간이라고 일이 줄어들진 않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엄청나게 브로드한 지표 하나 뿐이었어요. (예를 들어 매출). 이후부터는 다 제가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페이지의 어떤 점을 어떻게 개선해서 지표를 얼마나(숫자로) 개선할 건지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를 합의(라고 쓰지만 승인)하면 이번 분기 나의 목표가 시작되는 겁니다. 분기 초에 플래닝했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결과를 개선해요. 분기 동안 실험이 실패하거나 더 좋은 가설이 나오면 진행항목이 바뀌기도 하지만 큰 맥락은 유지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표는 30%정도 도전적으로 잡고 분기말에 내가 얼마나 달성했는 지 회고도 합니다. 책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훨씬 더 리소스를 많이 쓰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어요.
그렇지만 OKR을 진행하면 내 성과를 뚜렷하게 보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 명확한 방향성 덕분에 길을 잃지 않는 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내 성과를 숫자로 뚜렷하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내 가치를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내 성과가 곧 내 가치가 되니까요. 이 점은 특히 이직을 준비할 때 수월하게 작용하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OKR을 기준으로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단들이 그렇듯 온전히 OKR만 사용할 수 있는가, 를 생각해보면 저는 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1. 협력을 보장할 수단이 필요해요
제가 이직하고 이질감 있게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제 OKR이 아니라서 이번 분기에는 할 수 없어요" "이미 OKR로 리소스가 다 찼어요" 등의 말이었어요. PO분들끼리도 "내 OKR도 아닌데 진행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KPI 기준으로 일하던 때는 R&R 만으로 구분되었던 것이, OKR은 R&R에서도 한 단계 더 내려가 내 OKR이냐 아니냐까지 세부적으로 보게 되었어요. 어찌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거에요. OKR은 숫자로 명확하게 성과가 드러나기 때문에 더 경계가 더 뚜렷하게 갈리고, 맡은 OKR 달성률에 따라 나의 가치가 평가되니까요.
그렇지만 뭐랄까, 저는 유난히 차가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업무를 할 때도 각자의 OKR이 있고 각자의 것에 집중하니 함께하는 것을 함께 볼 여유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OKR을 명확하게 숫자로 보고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확실히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지만 성과지향적인 구도가 될 수밖에 없어요. 또한 OKR 외의 것이 등한시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OKR이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지난 분기의 타겟이 더 이상 내 OKR이 아니라면 유지보수가 안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OKR 속에(혹은 OKR 외에) 협업이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지금 회사에서는 동료평가를 OKR과 병행하고 있어요. 현재는 직접적으로 협업지수를 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동료평가에서도 협업에 대한 고려를 추가적으로 한다면 더 OKR의 차가운 공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2.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더 유용해요.
저는 제품생애주기를 기준으로 치면 성숙기에 접어든 프로덕트를 다루다가 도입기에 있는 팀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느끼는 점은 지금 팀에서는 OKR이 이전만큼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도입기는 수 많은 문제들 중에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 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이에요. 전략적인 목표가 월단위, 주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분기별 목표를 공들여 세우는 것은 리소스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았어요. OKR은 조직의 큰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목표를 세워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이 때는 모수가 적어서 메트릭을 얻기도 쉽지 않고 UI개선이나 문구나 오류 개선 등 메트릭으로 쉬이 나타나지 않는 부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 없이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도입기나 성장기에는 오히려 top-down으로 명확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어요. 성장기에도 어쩌면 KPI와 결합한 OKR방식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저는 전반적으로 OKR방식에 만족하고 있어요. 주어진 목표를 따라가는 대신 제 가설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인 시야를 더 키울 수 있고 수치적인 피드백이 명확해서 제가 성장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