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하와이를 동시에
이번 여행은 한 달 전부터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너무 시간이 빠르게 가는 통에 생각한 만큼 꼼꼼히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직장인이 된 이후 가장 열심히 준비한 여행이 아닌가 싶다. 가이드북까지 샀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일이 될거라고 각오했던 것과 달리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와이키키의 길거리를 로드뷰로 먼저 체험하니 파삭한 하와이의 바람을 먼저 느끼는 듯했다. 팬케잌 맛집에서 브런치를 먹고 드라이브를 시작하는 상상을 하고, 구글맵을 보며 다운타운에 숨겨진 현지 직장인 맛집을 미리 찾아보기도 했다. 와이키키에 무스비 도시락을 싸 가는 나를 미리 그리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무스비 틀과 후리가케를 샀다. (물론 저렴한 표를 찾아서 입장권을 미리 예약을 할 때는 귀찮았지만 말이다.)
주말 아침에는 침대에서 가이드북을 보며 하와이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상상을 했더니 한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끝낸 것이 얼마만이던가, 그것도 가이드북 완독이라니. 이제 나는 눈을 감으면 숙소 앞의 거리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숙소 앞 우동집에 늘어선 줄과 선셋이 황홀한 비치도 눈에 선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듯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사무실 시공간과 바삭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는 하와이 시공.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이 된 것만 같았다.
사무실 자리를 비운 동안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주 내내 매일 12시간씩 일하는 하루가 이어졌지만 견딜만했다. 하루 중 모니터를 보지 않는 시간 동안은 짬짬이 와이키키의 나를 상상한 덕분이다. 야근하며 야식을 잔뜩 먹은 덕분에 뱃살을 빼고 가려던 계획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아무렴 어때, 자유의 바다 하와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