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달살기 전과 후
한달살이를 시작하면서 5/9 하와이에서 첫날 이런 글을 썼다.
이번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것은 내 앞 날을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에 대한 답이다. 나의 생각의 대부분이 일에 매여 있고 이런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놓지 못하고 있다. 딱 이 년만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고 사실 일하는 시간과 업무강도를 뺀다면 사람 스트레스는 전혀 없어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계속 합리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핑이나 독서 등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취미는 점점 뒷전이 되고 내 생각의 대부분이 일과 돈에 매였다.
전에 유튜브에서 스쳐가듯 주한독일 외신기자가 인터뷰를 한 것을 봤다. 한국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의 말에 100% 동의를 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매 선택의 순간에, 일상에 끊임없이 오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행복한 선택보다 성공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라 했다.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나부터 그런 선택을 하고 있기에 마음에 깊이 남았다. 내가 하는 선택들은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것이고 이 때문에 나는 매 순간 고민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딱 10년 전 22살의 나는 하와이에서 잠시 살면서 인생의 많은 선택이 바뀌었었다. 더 행복하고 건강한 결정을 했고 보여주기 위한 것에 마음을 덜 썼다. 까맣고 살이 너무 쪄서 눈코입이 작아진 채로 돌아왔지만 외적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번의 한 달 살이도 그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한다. 내 삶을 예쁘고 멋지게 만들기보다는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결정을 하도록 돕는 30일이 되었으면 한다.
쏜살같은 동시에 영겁 같은 한 달이 지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나고 그대론데 그곳에 잠시 있는다고 뭐가 바뀔까 하는 의심도 조금 들었지만 그럼에도 한 달이 지나고 난 지금 나는 조금 많은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어느 곳이든 거주자의 형태로 지내다 보면 그곳의 생각과 문화에 녹아들게 되는 법이었다. 훌훌 털고 자유만을 위해 버리고 떠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자유와 여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되찾았다. 그곳의 여유로움을, 사람들이 건네는 미소와 다정한 말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만큼 나도 그들에 속하고 싶었다.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대신 시간을 꼭꼭 씹어 쓰는 그곳의 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서 한국에 들고 오고 싶었다.
그곳에서 30일 간 D-day를 향해 하루하루를 그어가면서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했다. 매일 일만 하면서 보내면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 외에 나를 채워줄 무언가가 매일매일 있어야만 하루 또 그다음 하루를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었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50% 이상을 모니터 앞에 앉아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16시간 중 딱 8시간만 일하고 싶었다. 그 시간 동안 숨도 못 쉬고 일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내 저녁시간을 야근으로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를 세 등분으로 쪼개어서 살 것이다. 아침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운동을 하고. 그렇게 살 것이다. 아침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와이에서 돌아온 주말에 망설임 없이 차를 예약했다. 돈이 빠듯했지만 할부를 이용하기로 했다.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간과 건강이 있을 때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다. 파도가 있을 때 양양으로 달려갈 수 있고 조금 멀리 사는 친구를 보러 개의치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하는 시간과 체력이 아까워서 집에만 있는 내 모습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내 삶은 내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내 삶의 선택을 더 자유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방향으로 꾸려나가기로 했다. 돈 몇 푼과 직장에서의 인정이 대수랴 싶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시간과 행복이고 그를 위한 방향으로 살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고 있다. 서핑과 쾌청한 날씨, 가족과 여름햇살과 책. 이것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