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를 기록하고 싶은 이유
https://brunch.co.kr/@kongkong2222/24
나는 패션회사의 서비스기획자로 일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흘러흘러 이렇게 되었다.
나는 패션이 좋아서 패션회사의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얘기는 기니까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보겠다) 서비스기획이 뭔 지도 모르고 서비스기획자가 되었다.
처음 배치받았을 때의 온라인운영팀(지금의 서비스기획팀)은 아직 체계가 정리되지 않았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간 나는, 그냥 회사를 “다녔다”.
주어진 일을 수동적으로 했다. 무엇부터 배워야할 지도 몰랐다.
사수가 있긴 했지만 경력만 있던 팀에서 처음 맞는 신입이었던지라, 모두가 어떻게 하는 지 잘 몰랐다.
그렇게 혼자 고군분투했다.
처음에는 그냥 엉덩이 누르기로 배웠다.
요령이 없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느리니까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개편 테스트를 할 때는 매일 밤까지 있었고, 테스트나 오픈을 한다고 밤을 샌 적도 꽤 있었다.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나면 모르는 게 분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
모르는 것들은 수행사 분께 물어보면 참 잘 알려주셨었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이 있는 층에서 보냈다. 기획을 할 때도 모르는 건 그 분들께 찾아가서 물어보고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법도 그 분들에게 배웠던 것 같다. 자연스레 수행사로 일 하는 조차장님 서과장님과 가장 친해지게 되었고 매일 점심 그들과 함께 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회사 밖에서의 삶에서 더 보람을 찾고, 주어진 일을 더 잘 하는 것에 집중하며 지냈다.
일이 조금씩 익숙해져서 나름 재미있었지만, “잘 모른다”라는 것의 컴플렉스가 계속 있었다.
코딩을 깨작깨작 배워보기도 하고, html을 배워볼까 하며 조차장님 서과장님에게 조언을 얻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아직 기억한다. 2019년 5월이었다.
프리랜서인 조차장님이 “리빙리”라는 경험자들의 후기를 강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커뮤니티에 기획자 특집을 한다며 알려줬다. 차장님을 따라 쫄래쫄래 간 나는 그 곳에서 처음으로 넓은 기획자의 세계를 보았다.
도그냥 이라는 분이 나와서 입사해서 고군분투하며 배운 본인의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너무 멋졌다.
나와 비슷한 환경이지만, 그녀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아 이 일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구나, 나도 배우면 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 길로 집에 와서 몇 일동안 도그냥의 브런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그녀의 브런치에서 업무 태도에 관해서, 이 업의 정의에 관해서 어렴풋이 익혔던 것 같다.
기획서는 예쁘게 읽기 쉽게 만들면 되는 구나,에서 프로세스까지 고려하는 것이 왜 필요한 지를 그 때 깨달았다. 그 전에 내가 하고 있었던 건 거의 전략분석 + 화면그리기에 가까웠던 것이다.
개발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백엔드와 프로세스를 내가 왜 깊이 고민해야 하는 지도 제대로 깨달았다.
무엇보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잘 되게 하는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 있었던 그녀는 업무의 경험을 공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변환해서 기록했다.
그 이야기는 나같은 꼬맹이 주니어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가 패스트캠퍼스에서 강의를 한다고 해서 냉큼 신청했다.
그 강의를 시작으로 본격 나의 기획자 인생도 시작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들었던 그 강의는 나의 기획자 인생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강의에서 그녀가 하라고 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했다.
페이스북에 가입해서 그녀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고, 상품 백엔드 구조가 궁금하면 판매자로 가입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녀가 추천해주는 책은 모조리 다 읽었고, 그녀와 수업 중에 과제도 열심히 해 갔다.
업무를 업무로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고민했더니
내 프로젝트는 단순한 내 업무가 아니라 내 자식, 내가 창조해 낸 무언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관심이 생기니, 내 서비스를 증명하기 위한 데이터들도 필요해졌다. 개발자와도 단순히 지지 않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던 마음에서, 서비스를 더 잘 만들고 싶어서 그들과 컴케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 강의는 단순히 수업내용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비스기획자로서 나의 멘토를 만난 일이었다.
일하는 방식,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그녀에게 배웠다.
이커머스의 역사를 훑으며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겠구나를 배웠고, 페이스북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기획자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녀의 친구를 팔로우한 것 중 하나가 엠제이였다.
엠제이는 그 때 당시 막 이직을 앞두며, “힙한 서비스들의 비밀”이라는 UX 강의를 했다.
그 강의는 온고잉중인 서비스들의 화면들을 UX원칙에 따라 그루핑하고 분석하는 포인트였다.
그건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이었다. 강의를 듣고 집에 가는 길 내내 멍했던 것 같다.
힙서비라는 새로운 컨셉, 커뮤니티를 만나면서 또 새로운 눈이 트였다.
그녀가 말한 서비스를 보는 방법들을 내 일상에 직접 차용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추천한 책들을 읽고 추천받은 서비스들을 다운받아 직접 살펴봤다.
도그냥에게서 백엔드(뒷단)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엠제이에게서는 프론트엔드(앞단)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서비스를 보는 시각을 새로이 정비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개발을 태워야만 서비스기획인 줄 알았다.
그런데 힙서비를 만나면서, 더 중요한 건 개발을 최소한으로 태우면서 유저가 우리 서비스를 잘 사용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기획자(PM,PO) 의 업무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저보이스를 많이 듣고,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서비스들을 많이 보며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빠질 수 없었다. 내 핸드폰에 커머스 외의 앱이 엄청나게 깔리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평소에 관심 있던 인지심리학과 UI를 붙여서 생각할 수 있다니, 또 이 분야에 대해서도 공부할 게 무궁무진하다니, 가슴 뛰는 만남이었다!
그렇게 힙서비챌린지(힙한 UX를 찾아 아카이빙하고 분석하는 챌린지)를 시작했고, 수 많은 UX원칙들을 발견하고 정리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사이트를 흡수하려 노력했고 언급된 책들을 모조리 읽었다.
그렇게 두 시즌을 보낸 후(시즌1은 참여하지 않았다) 힙서비콘 시즌3(힙서비 중 인사이트풀했던 사례들을 직접 정리하고 모아서 하는 강의)에 연사로 서게 되었다.
힙서비콘에 선 것은 또 새로운 터닝포인트였다
내가 읽고 생각하고 찾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찬 지 몸소 느꼈다.
강의를 준비하며 힙서비를 운영하는 마케터와 pm,po들을 만나서 이야기했고 또 한 번 시야가 트이는 경험을 했다.
그들의 세계는 일잘러의 세계였다.
일을 정말로 사랑해서 하는 그들은, 서로의 일이 잘 되기를 도와주며 으쌰으쌰하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나도 콘을 준비하며 그들의 도움을 정말로 많이 받았다.
딱딱하고 대학강의같았던 나의 강의는 그들의 목소리를 거쳐 재미있고 귀에 쏙 들어오는 강의로 탈바꿈했다.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랄까.
그러면서 나도 다른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더 잘 일하고 싶고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가 도그냥의 브런치를 시작으로 힙서비 커뮤니티까지 거치며 이만큼 성장한 것처럼,
어떻게 일할 지 모르는 기획자, pm, po 들에게 나의 경험을 기록해서 주고 싶다.
처음 리빙리를 들은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달라서 같은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리빙리에 가기 전, 넓은 기획자 세계를 보기 전의 3년이 너무너무 아까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시간동안 더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더 많이 배웠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든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기록들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