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보니 패션회사 서비스기획자가 되었다.

취준생 공나리둥절,,,

by 담다리담


학생 시절 나는 패션이 재미있었다. 옷으로 나를 표현하고 나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행위가 즐거웠다.

이왕 일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를 위해 일하고 싶었기에 패션이나 백화점에 취업하려 무던히 애썼다.

옷과 관련된 경력이라곤 중간에 관둬버린 의류학과 부전공 경험 뿐이었는데, 다행히 대형 의류제조사에 영업관리직으로 합격했다. 내가 바라던 회사 중 하나였다.


합격통보를 받은 그 날은 스터디를 같이 하는 동생과 집 주위 고기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더랜다.

밥 먹는 도중 띠링 알림이 와서 음식을 씹으며 열어보았더라지. 그리고는 악! 소리를 질렀다.

얼떨결에 동생과 식당 아줌마의 축하를 받았던 것 같다.

취준 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도 눈물도 찔끔 났다.


1년 간의 취업준비생 기간이 끝난 날이었다.

그날로 부산 집에 내려가 엄마아빠와 부둥부둥 껴안고 기뻐했다.

그리고는 엄마 돈을 빌려 훌쩍 포르투갈로 날아갔다.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긴 해외여행이겠지 하며.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회사원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연수원에서 나는 병든 닭처럼 졸기만 했다. 가뜩이나 여행으로 시차적응이 되지 않는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짜여진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반쯤은 기억 나지 않는 연수원 생활이 끝나고, 신입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매장실습을 하고 아이데이션을 하며 4개월을 보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나도 패션 일을 시작하는구나 싶은 어렴풋한 기대에 부풀었다. 사람들이 어언 생각하는 세련되고 멋진 패션회사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그런데 부서배치 발표날, 나는 패션과는 전혀 동떨어진 부서로 떨어졌다. 청천벽력 같았던 그 이름은 “온라인운영팀”이었다. 온라인 서비스를 기획하는 팀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직업이 있는 지도 몰랐고 컴맹인 내가 온라인서비스에 밝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영업관리로 지원한 내가 그 곳으로 떨어진 이유인즉슨 이렇다.


같이 신입교육을 받던 한 동기가 본인은 UI UX를 만져보고 싶다고 부서배치 면담 내내 이야기를 했더랜다.

그 얘기를 들은 인사팀에서는 온라인운영팀 팀장님께 이야기 해서 없는 자리를 굳이굳이 만들어 냈는데, 막상 그는 다른 회사에 합격해서 날라버렸다. 팀장님께 ‘오려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그냥 없던 일로 해 주세요’ 라고 하기가 곤란했던지 그 중 가장 질겨보이는 나를 그 자리에 대신 앉혔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md나 영업관리를 하고 싶었다.

뭐 하는 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그 팀에는 공채가 한 명도 없다고 하니 더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인사팀 면담을 신청해서 왜 내가 그 팀에 가야 하는 지 물어봤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이 막 났다.

하필 내가 그의 빠진 자리를 채워야하는 것이 서러웠다. 나는 뭔지도 모르는 UI/UX를 하려고 이 회사에 열심히 들어온 게 아닌데…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그 큰 회사에서 고작 신입사원인 내가 싫다고 한다고 그 절차를 다 바꾸어줄 리 만무했다.

그저 왜 그래야 했는 지 얘기해주었다.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그 대답은, 가장 선민의식을 덜 가질 것 같은 사람이 나였다고 했다. 그랬다. 인사팀에서는 선민의식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녀와의 면담 후 기운이 빠진 나는 그냥 그대로 수순을 따랐다. 내가 뭘 더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그게 내 인생에서 얼마나 더 큰 변화인 지 그 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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