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와 에프킬라가 없는 집

by 담다리담

5월 연휴를 맞아 엄마 집에 내려왔다. 엄마는 원래 살던 어촌을 떠나 산골로 이사를 했다. 엄마의 평생소원이었던 마당 넓은 집을 산자락 마을에 지었다. 소박하고 창이 넓은 베이지색 집이다. 햇빛에 산들거리는 초록잎과 산들이 양쪽으로 크게 트인 창으로 시야를 가득 메운다. 거실과 주방 창으로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강아지들도 여유롭고 행복하다. 이 풍경의 한 조각에 들어와 덩달아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강아지들과 놀다가 새벽 일찍 산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엄마집에 내려온 첫날, 유난히 막힌 차 덕에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으려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웬걸 비누 옆에 다리 많은 벌레가 한 마리 떡하니 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문을 다시 닫고는 남편을 불렀다. 그는 보더니 돈벌레라는 진단을 내렸다. 군대에서 많이 잡아봤으니 에프킬라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에프킬라를 뿌리면 수많은 다리가 축 늘어지면서 몸집이 작아져서 무섭지 않고 금방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자는 엄마를 깨워 에프킬라를 찾았더니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돈벌레가 종종 나오는데 금방 사라진다고 두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돈벌레가 있는데 씻기에는 너무 무서운걸 어떻게 한담.. 고민 후 슬리퍼로 벌레의 옆을 치니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씻는 동안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나오지 않았다. 괜한 생명을 죽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녘에 도착했으니 엄마집 강아지들과 인사를 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일단 우리 강아지는 방에서 함께 재우기로 했다. 시골 부모님의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날은 예외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언제나처럼 발을 닦기 위해 물티슈를 찾았는데, 엄마가 "물티슈 없는데" 했다. 물티슈가 어떻게 없어? 하니 안 쓰니까 없지 한다. 행주라도 줄까 물어봐서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차에 가서 물티슈를 가져왔다. 내 삶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하루에도 몇 장씩은 물티슈를 쓰는 것 같은데, 엄마집에는 물티슈가 없었다. 남편도 물티슈 없는 집을 의아해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이 집은 원래 그런 집이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할머니가 밭에서 수확해 온 쑥갓과 오이, 상추를 먹었고, 이모가 직접 키우고 담가 준 마늘종 장아찌를 함께 먹었다. 다음 날 엄마는 지역체육센터에 운동을 갔다가 친구가 키운 보드라운 상추를 얻어 왔다. 냉장고에는 항상 풀이 가득이다. 아빠는 집 옆 텃밭에서 강아지들 먹일 고구마와 우리 먹을 가지, 오이 등을 심었다. 매일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아빠가 아침마다 밭에 뭍는다. 우리 강아지가 마당에 응아를 했는데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받기에 담아 밭으로 가져갔다. 우리가 먹을 음식에 거름 대신 주는 영양분이다.


우리 엄마아빠는 지속가능성의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른다.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는 방식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였다. 음식물쓰레기를 거름으로 해서 직접 기른 채소를 먹고, 벌레를 보면 살려주고 환경오염이 될만한 물질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카페에서 종이컵 주는 걸 참 싫어한다. 환경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싫어한다. 머그컵으로 먹는 게 더 기분이 좋다고 했다. buy local의 개념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앞바다에 배가 들어오면 할머니가 가서 생선을 사 오시고 주변의 사람들이 직접 기른 음식들을 사거나 나눠 먹는다. 봄이 되면 직접 캔 쑥을 들고 방앗간에 가서 쑥떡을 해 먹고 가을이 되면 옆동네에서 난 쌀을 산다.


도시에서의 내 삶을 반추했다. 최근 나의 마음의 걸림돌이 있다면 매일 먹는 커피의 일회용 컵이다. 일하다가 시간이 아까워서 커뮤니티센터에 앱으로 미리 주문하고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픽업해 오고는 한다. 그러고는 그 컵을 그대로 내 텀블러컵에 끼워서 들고 먹는다. 플라스틱 컵의 얼음이 빨리 녹는 게 싫어서 보온이 짱짱한 컵을 덧대어 끼우는 것이다. 어차피 텀블러에 먹을 거, 플라스틱 컵은 제 역할은 거의 카페에서 커피를 담아 우리 집까지 올 때까지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간이 아까워서 꼭 주문을 하고 준비된 커피를 픽업하러 간다. 한 날은 큰 맘을 먹고 텀블러를 들고 내려가서 주문해서 받아왔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5분을 기다렸나 싶다. 그런데 아메리카노 물의 비율이 달라서 맛이 조금 덜했다. 그 이후로 더욱 그냥 계속 플라스틱컵에 받아오게 된다. 그냥 항상 마음만 불편하다. 그렇지만 그 조금의 맛의 차이, 그 조금의 시간의 차이를 극복할 만큼은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한 5-10년 전만 해도 지속가능한 것이 힙할 때가 있었다. 거북이 코에 낀 빨대 사진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불러왔다. 종이빨대, 생분해되는 빨대 등을 사용했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 힙한 일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전 세계가 먹고사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런 힙한 일들은 다시 부르주아 같은 일이 되었다. 힙한 식당이라면 어디든 찾아볼 수 있었던 내추럴와인(자연의 것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유기농공법,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은 방법으로 제조한 와인) 리스트도 요즘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더 비싼 돈을 주고 먹을 마음이 줄어든 것이다. 요즘은 환경보다 먹고사는 일들이 더 중요하다. 나도 그렇다. 예전처럼 텀블러를 굳이 챙겨서 카페에 가지 않고 굳이 용기를 들고 음식점에 가서 포장해오지 않는다. 그 조금의 시간과 품에, 또 비용에 더 인색해졌다.


엄마아빠의 삶이 서울에서의 삶보다 번쩍번쩍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삶에서 진정한 럭셔리를 느꼈다. 아침 일찍 강아지들과 숲길을 산책하고 집 옆의 밭을 갈고, 정남향으로 내리쬐는 햇살에 빨래를 너는 일 (건조기가 있음에도 아빠는 햇살에 너는 빨래를 좋아한다).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키운 싱싱하고 보드라운 채소를 먹는 일, 앞바다에서 막 잡아온 생선을 사 오는 일. 요즘 세상 사람들이 돈에 시간에 인색해져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야말로 힙하고 럭셔리한 일이었다. 물티슈가 없는 집에 사는 삶, 감당할 자신이 없지만 말하자면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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