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세금, FOMO

by 담다리담

나는 어릴 때부터 금융지식에 익숙한 것이 결국 하나의 사회자본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국제고를 나와 고등학교 때부터 주식을 배워온 친구, 부모님이 계좌를 터 주어 어릴 적부터 재미 삼아 투자해 본 친구, 투자에는 흥미가 없어도 아버지가 알려주는 매수·매도 타이밍만으로 수익을 올리던 친구를 보면 종종 박탈감이 들었다.


내가 주식이라는 단어를 겨우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내가 자라난 환경에서는 금융투자는 드물었고, 부모님에게 근로소득은 거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혹 돈이 조금 모이면 지인의 추천으로 시골의 임야나 토지를 사두는 게 전부였다.


서울의 상경계 대학에 진학한 건 다행이었다. 그곳은 내게 완전히 낯선 정보가 밀려들어오는 세상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이미 금융 지식을 갖추고 투자하고 있었다. 청약통장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친구 권유로 은행에 가서 생애 첫 ‘내 손으로 개설한 통장’을 만들었다.


새내기 시절 떠오르는 기억 하나. 어떤 아이돌이 컴백한다는 소문이 돌던 어느 날, 나는 그들의 신곡을 멜론에서 찾아보았고, 내 옆의 친구는 바로 다음 날 JYP 주식을 사서 몇일 치 술값을 벌었다. 내 첫 번째 FOMO 경험이었다.


그 무렵 나는 놀러 다니거나 옷을 살 돈도 모자랐다. 아르바이트로 최저시급보다 조금 못 미치는 3800원을 받아 용돈으로 사용했다.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사회초년생 시절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투자를 해 온 친구들은 달랐다. 과감했고, 새로운 투자처에도 빠르게 뛰어들었다. 비트코인이 막 거래되던 시절, 어떤 친구는 신용대출로 4000만 원을 당겨 이른바 잡코인에 넣었다가 전부 날렸다. 얼마 후 우리는 술자리에서 울상인 그를 놀리며 웃었지만, 그는 곧 다시 투자에 나섰다. 많은 친구들이 FIRE를 꿈꾸며 출근길에는 ‘국장’, 퇴근 후에는 ‘미장’에 매달렸다.


나 역시 여윳돈이 생기자 드디어 주식에 손을 댔다. 단톡방과 리딩방을 불나방처럼 오가며 그때 한창 유행하던 테마주를 모아갔지만, 결과는 상장폐지 직전의 휴짓조각과 파란불로 가득 찬 계좌였다. 그때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주식은 잘해야 본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지만 돈은 잃은 것뿐이었다. 그 계좌를 기억 저편에 묻어둔 뒤, 나는 다시 근로소득만 바라보는 삶으로 돌아왔다. 근로소득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세상은 코로나를 맞이하며 100년 만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맞이했다. 현금의 가치는 빠른 속도로 낮아지며 근로소득의 가치가 줄어들었다. 치솟는 집값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예금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두던 나에게 두 번째 FOMO는 무섭게 다가왔다. 그놈의 '가즈아'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결국 나는 무리해서 외곽의 조그만 집을 마련했고 근로소득을 모조리 대출을 갚는 데 사용했다.

출처 chat GPT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코로나 시절이 끝나고 집값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속이 쓰렸지만 그 누구도 투자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좋았다. 부동산 주식 할 것 없이 모두가 잃은 때였다. 이제 보면 이건 내 생에서 처음 겪은 자본 상승기와 하락기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두 번째 자본 상승기가 한참이다. 이제 다시 사람들은 모이면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상승하는 자본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유튜브에서는 닷컴버블 같은 폭락장을 예견하는 영상과 끝없는 자산가격 상승을 확신하는 피드가 조회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시 스멀스멀 느껴지는 FOMO를 이겨내기 위해 투자책을 사기 시작했다. 기호처럼 들리던 S&P500이 무슨 의미인지를 배웠고, 먼 미래인줄 알았던 연금저축은 절세를 위해 필요한 계좌라는 것을 알았다.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 증권사에 가입하려는데, 오래된 신분증의 흐릿한 사진을 앱이 인식하지 못했다. 내 투자는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지난주 신청한 신분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그동안도 시장은 움직이는 것 같아 내 마음속 불안감은 진행 중이다.


근로소득은 이제 밑 빠진 독 물 붓기처럼 느껴진다. 인플레이션이 그리고 세금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좋았을걸 하는 말은 할 수 없다. 나에게도 기회는 많았으니까. 어쩌면 당장 다음 달 새로운 하락기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해도 이번에는 꾸준히 해 보아야겠다. 현금이든 금융소득이든 무엇이라도 잃을지라도 하나라도 배움이 있고 잃는 것이 낫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