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렌터카를 타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마트였다. 거의 일주일째 아무 장도 보지 못하고 매 끼를 사 먹기만 해서 싱싱한 식재료가 그리웠다. 이제 차가 있으니 짐을 걱정하지 않고 식료품과 와인을 쟁여놓을 수 있었다. 얏호. 뉴질랜드의 마트는 정말 신나는 곳이다. 질 좋은 고기와 치즈, 농산물이 넘쳐났다. 싱싱한 초록 빨리 노랑 채소가 색깔별로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고 대부분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고기 코너에는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가 종류별로 있었고 가격도 너무 저렴했다. 원물 강국답다. 그 어느 야채나 고기, 생선이든 신선하고 저렴했다. 호텔에서 지내는 우리가 애석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신선한 재료들로 맘껏 요리하며 지내면 좋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신나는 것은 이곳 마트에는 와인 셀렉션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와인코너일 뿐인데 규모가 시드니에 커다란 와인샵보다 컸다. 원래 장을 보고 별도로 리쿼샵을 가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무거나 집고 비비노앱에 평점을 찍어보면 낮으면 3.9, 높으면 4.2다. 가격 또한 비비노에 찍힌 가격보다 오히려 저렴하거나 같다. 한국에서는 비비노 가격만큼 저렴한 가격을 만나기가 힘든데 이곳은 오히려 비비노보다 저렴하다. 우리는 와인산지에 왔다. 신난다!
Central Otago라는 지역의 섹션이 별도로 있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피노누아가 많았다. 열심히 보고 골라 우리가 좋아할 만한 피노누아 두 병, 쇼비뇽블랑 두 병을 골라 담았다. 와인을 잔뜩 사서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무슨 걱정인가 이제 우리는 차가 있는데! 식료품을 잔뜩 들고 숙소로 올라왔다. 이곳 숙소는 리조트 형식의 숙소였는데 호수 뷰가 멋진 곳이라 우리 공주가 기대를 굉장히 많이 했던 곳이다.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눈앞에는 멋진 호수뷰가 펼쳐지는 널찍하고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주변마을을 탐방했다. 옆마을 아무 도로로 네비를 찍고 가서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계곡을 만나서 찬물에 체리를 씻어 사워도우를 먹었다. 찬물에 발을 담그고 그 곳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설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아이들은 본격적인 웻수트를 입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물이 차긴 차다. 계획 없이 만난 보석같은 계곡에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은 주변의 양고기집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숄더랙을 식료품들과 컵떡볶이와 함께 먹었다. 여행 와서 처음 먹는 한식. 떡볶이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쫀득하고 빨간 떡을 한 입 넣었을 때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단백질이 부족할 때쯤 양고기도 떡볶이 소스에 찍어 한 입 먹어주니 아주 조화롭다. 떡볶이는 모든 것에 잘 어울린다. 잊고 있었던 떡볶이 사랑이 다시 돌아왔다. 떡볶이 최고! 배를 불리었으니 몸을 담글 차례다. 오렌지색 배스솔트를 널찍한 욕조에 풀어 노곤한 몸을 풀었다. 내일을 골프를 치러 가는 날이다.
나는 골프 초보다. 슬렁슬렁 배운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딱 한 번 실외에서 쳐본 아주 생짜 초보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골프 천국이라 하니 뉴질랜드에서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행에서 액티비티를 하나 더했을 때 여행이 얼마나 다채로워지는 줄 알기 때문이다. 과거 서핑에 빠져있던 시절, 포르투갈 여행에, 발리여행에, 하와이 여행에 서핑을 섞었을 때 내 여행을 훨씬 더 벤처러스하고 활기찬 시간이 되었다. 이번 뉴질랜드에서는 서핑 대신 골프였다. 뉴질랜드의 골프는 코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2인플레이도 가능해 눈치 볼 필요도 없다고 해서 냉큼 골프를 일정에 넣었다.
결혼을 준비하고 이사를 하는 틈틈이 골프연습을 하긴 했으나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리는 없었다. 그래도 여기 왔고 예약날은 다가왔다. 당일 아침, 골프장이 열기도 전에 일찍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아주 멋진 곳이었다. 호수로 둘러싸인 반도 같은 동그란 지형 전체가 골프장이었다. 골프장 어디서든 호수를 볼 수 있었고 그 안에는 곳곳에 나무와 잔디가 조화롭게 심어져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곧 프로샵에서 분주하게 직원이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 직원도 어릴 때 학교에서 한국인 친구들이 꽤나 많았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골프에 미쳐있었다며 회상했다. 깔깔 웃는 우리에게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며 어디가 사진이 잘 나오는지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괜히 긴장되어 바스켓을 받아와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연습을 했다. 골프를 치러 가자 곧 다른 두 명이 조인했다. 여기도 두 팀이 조인해서 치는 곳인가 보다. 굉장히 친절한 할아버지와 젊은 이었지만 페이스가 맞지 않았던 터라 그들을 세 홀만에 먼저 보냈다. 본격적으로 둘이 되자 우리도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하며 편하게 칠 수 있었다. 어딜 가든 호수를 끼고 있는 뷰가 너무 멋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각이는 잔디를 밟는 느낌도 좋았고 깨끗한 하늘과 풀냄새도 좋았다. 내가 날린 공을 찾으러 다니느라 나도 공주도 총총 뛰어다니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15홀 정도 가서 조금 지치나 싶었더니 금세 18홀이 끝났다. 전반적으로 시설도 좋고 뷰도 좋고 친절해서 꼭 다음에 다시 방문하고 싶었다. 즐거운 시간을 뒤로한 채 숙소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잤다. 뉴질랜드에서는 목욕을 참 많이 하게 되는데, 이곳의 건조하고 냉랭한 공기 덕에 목욕이 자주 생각난다. 특히 몸을 움직인 후 따끈한 탕에 몸을 담그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한숨 자고 호텔에 있는 버거집으로 갔다. 키위버거를 시켰는데, 이럴 수가 어제 먹은 퍼그버거보다 맛있다. 키위버거는 뉴질랜드식 버거인데, 미국식 버거보다 재료가 조금 더 건강하다. 계란프라이와 비트피클이 들어가는데, 그래서인지 자극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의 입맛을 저격했다. 친절하지만 허당인 직원이 우리에게 레드와인 두 잔 대신 화이트 와인 두 Jar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시킨 게 아니라는 우리에게 눈짓으로 찡긋찡긋 하더니 너네가 시킨 게 맞지? 하고는 레드와인 한 Jar 더 가져다주었다.
이거 다 먹고 우리 방에는 돌아갈 수 있으려나, 싶다가도 호숫가의 찬바람을 맞으며 꿀꺽꿀꺽 잘도 마셨다. 저녁놀의 호숫가를 산책도 하고 우리에게 경계 없이 다가오는 오리랑도 놀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9시 30분은 되어야 해가 지는 남극의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저녁을 충분히 즐겼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해가 늦게 지면 얼마나 좋을까? 7시에 퇴근해도 대낮이라면 퇴근하는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울 텐데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퀸스타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