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너무 열심히 탄 나머지 오늘은 일부러 알람을 꺼놓고 잤는데 자연스럽게 다섯 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조금 더 눈을 감아볼까 했지만 결국 사십 분쯤 일어나서 뭉그적 미적대었다. 어제 점심때 수영복을 입고 탄 덕분에 등이고 얼굴이고 다 불이 났다. 화상크림을 슥슥 바른다. 피부야 미안해.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지 못하는 나 때문에 피부가 가엾다. 햇빛알레르기가 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인을 만나서 고생이 많다.
오늘부터 한 자릿가 남았다. 이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너무너무 슬프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고 항상 시간은 왜 이렇게 모자란 걸까? 이제야 나도 여기서 익숙해졌는데 말이다. 이제야 여기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자연스럽게 잘 지내는데 말이다. 이제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샵에서 건 바다에서건 길에서건 만난 아무랑도 아무 말이라도 잘하는데 말이다. 이제 나는 여기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있는 동안 내가 선택한 이 시간과 공간을 만끽해야지. 오늘은 보드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보드이고 파도도 너무너무 좋았다. 보드샵에서 렌털종이를 적는 동안 내가 말하기도 전에 스카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드(아마 렌털보드 중 가장 인기가 좋은 보드)를 알고 미리 꺼내놓아 주었다. 고맙습니다.
바다에 들어오자자마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하는데 순간 이런 내가 낯설었다. 진짜로 여기에 적응이 된 것 같아서. 첫날 어정쩡하게 있었던 내가 떠올랐다. 처음 타는 보드와 처음 타는 파도에 라인업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했었는데 말이다. 바다 위에서 서로 인사를 하던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가 생각이 나서 조금 더 낯설었던 것 같다.
바다 위에서 만난 에드에게 "여기 온 중 최고의 파도를 타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어제가 더 좋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파도를 타느라 집에 가지를 못했다. 계속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면서 돌아오는 것이 웃겼다ㅋㅋㅋㅋㅋ 아참 그리고 귀여운 커다란 거북이도 보았다. 물 밖으로 나와서 입을 벌리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에드한테 거북이!! 거북이!! 숨 쉰다!! 했더니 같이 흥분해서 보고는 바보 같은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거북이가 숨을 쉬어?
흠 나도 몰라
거북이는 물속에서 숨 쉬나?
흠 나도 몰라 근데 물 밖에 나오면 숨 쉬는 것 같이 생기긴 했어 입 벌리잖아
그렇긴 해 숨 쉬는 것 같아
오늘도 너무너무 좋은 파도를 타고, 다들 떠나고 난 후 한 아홉 시 반에 나왔다. 타이드가 바뀌는 때인지 아홉 시부터는 파도가 팍 줄었다. 거의 앞으로 밀려나오다시피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퀘사디아를 먹고 커피숍에 와서 커피를 먹으며 밀린 글을 쓰는 중이다.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좋았다.
아앗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달라고 하는 걸 까먹었다ㅠ 오늘 잠은 다 잤네ㅠ 하지만 달콤한 커피의 맛에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뭐 내일의 내가 고생하지 뭐.
내 옆 테이블 귀여운 참새씨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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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것에 대한 애증의 마음
한국시간 오전 9:20. 업무시작시간 10분 전. 평소라면 그래도 30분 일찍 9시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이번 주는 참 일할 맘이 나지 않는다.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는 나는 그저 놀고 싶을 뿐. 이렇게 야근하지 않고 일을 하는데도 일이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붙잡고 있는 일이 몇 개 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스탠스로도 일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업무강도가 아주 높고 요구되는 것이 너무 많지만 그만큼 성장하기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놈의 성장이 뭐라고! 하며 동료 분들과 자조적으로 깔깔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벌써 일 년 반이 지났고 나도 꽤나 정말로 성장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이 회사 덕에 영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하와이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이게 다 회사에서 어쨌든 강제로라도 맨날 영어를 써서 그런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재택을 할 수 있어서 휴가가 끝나고도 2주나 더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곳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동안 얻은 것이 꽤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일 적으로든 영어로든 나를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해 주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그리고 그것을 더 잘하려면 어느 정도의 힘듦은 수반될 수밖에 없다. 힘들지 않으면 성장도 없으니 말이다. 일은 딱 힘든만큼 느는 것 같다. 내가 더 많은 일을 쥐고 있는 만큼 나의 힘도 더 커지고 나의 권한도 더 많아진다. 적어도 여기서만은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 레벨이 낮은 나의 의사결정에 이렇게 연차 높은 분들이 기대는 것이 종종 생경하다가도, 그들은 나의 경험이나 역량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득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나의 책임에 기대는 것이다. 나는 그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니 꽤나 여유롭다 싶다. 그렇지만 얼른 주말이 되어서 조금 더 여유로워져서 공원에 누워서 책이나 읽었으면!! 읽고 싶은 책이 두 권이나 책꽂이에서 잠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