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하와이 한 달 살기 마지막 한 주

집 주변 즐기기

by 담다리담

이제 오늘로써 5일 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돌아가는 주가 되었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돌아간다. 한 달이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길다. 꽤나 많은 시간을 있었고 나의 생활방식도 조금 바뀌었다. 더 부지런해졌고 많이 먹고 잠도 많이 잔다. 앉아 있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서핑을 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활발하게 쓴다. 그만큼 잠도 더 푹 잤고 밥도 더 많이 먹었다.


요즘 나는 꽤나 루틴 한 삶을 살고 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해서 서핑을 갔다가 씻고 낮잠을 자거나 카페나 공원에 다녀온다. 낮부터 일을 시작해서 열한 시 반에 일이 끝나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든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노력해도 되지 않던 규칙적인 삶, 그리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삶을 여기서는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아무리 피곤해도 눈이 떠진다. 하루를 둘로 똑 쪼개어 쓰는 이 삶이 좋다. 오전에는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고 오후에는 불어넣은 에너지로 돈을 벌어 생활을 영위한다. 첫 번째 반쪽 삶 동안 활발하게 움직이고 두 번째 반쪽 삶에는 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나에게 잘 맞다. 시차 덕분에 햇살이 가장 밝을 때 나도 가장 생기가 넘칠 수 있어서 좋다. 하와이의 시간도 나와 같이 움직이다. 카페들은 새벽 여섯 시에 열어서 오후 두 시면 문을 닫는다. 내가 서핑을 다녀올 때 하와이는 가장 부산스럽다.


먹는 것의 종류도 어느 정도 정해졌다. 아침에 밥이나 요거트를 욱여넣고 서핑을 갔다 오면 무엇이든 잔뜩 먹는다. 보통은 포케나 주변의 음식점에서 사 먹는다. 후식까지 먹으면 오후 내내 앉아있을 때 속이 부대껴서 점점 삼가기 시작했다. 디저트를 좋아함에도 미국의 디저트들은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게 달고 느끼해서 내 입맛도 속도 적응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커피로 정신을 마비시키고는 일을 시작한다. 일을 하면서 과자나 달달한 파인애플 같은 것을 집어먹고는 밤에 잠이 든다. 요즘은 체력이 달리다 보니 점심에 카페인이 있는 음료를 마시면 밤에 잠을 설치고 그러면 다음 날 서핑할 때 확실히 훨씬 힘들다. 커피는 무조건 디카페인만 먹으리라 다짐하지만 식당에서는 드립커피를 주로 주다 보니 디카페인이 있냐고 물어보기조차 민망할 때가 있다. 마치 구내카페에서 프라푸치노 있냐고 묻는 것 같다.


오늘도 파도가 괜찮았다. 처음에는 꽤나 좋았는데, 이번 주는 이상하게 9시가 딱 되면 타이드가 바뀌면서 파도가 팍 줄어든다. 지난주에도 이랬는지 긴가민가해서 에드에게 물어보니 이번 주만 유난히 그렇다고 했다. 줄어든 파도를 뒤로 하고 아홉 시 반쯤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왔다. 오늘은 전부터 가려고 겨뤘던 sweet E's에서 브런치를 먹어야지. 평일인데도 웨이팅이 꽤나 긴 것을 보니 정말 맛집이구나 싶었다. 조금 욕심을 부려 에그베네딕트와 팬케이크를 시켰더니 양이 많다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너무 위가 터질 것 같아 몸부림을 쳤다. 아시아인에게 미국의 1인분은 이미 많다.


한 달 사는 동안 여태 돌아다니지 않았던 와이키키 반대쪽을 탐방했다. 몰랐는데 집 주변에 꽤나 가까운 곳에 세이프웨이가 있었다. 월마트와 타깃뿐인 줄 알았었건만 더 가까이에 더 좋은 옵션이 있었다. 역시 탐험을 해야 해. 세이프웨이는 내 라이프스타일에 훨씬 더 적합한 것들을 팔았다. 월마트보다 가격은 조금 더 비쌌지만 내가 월마트에서 찾던 많은 것들 - 다양한 종류의 요거트와 치즈, 신선한 샐러드야채 - 을 이곳에서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떠날 때쯤 알게 된 것이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 또 올 것이니까. 공유자전거인 비키도 지나가는 길에 눈에 띄었다. 비싸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탈 생각을 안 했는데 정기요금 중 commuter plan을 하면 꽤나 저렴하다. 일회용은 비싸지만 정기권은 엄청 싼 것이었다. 다음번에 오면 비키 정기권을 끊어서 장 볼 때나 단거리는 슝슝 가야지 싶었다.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서는 낮잠도 못 자고 좀비처럼 뜬 눈으로 핸드폰 스크롤을 내렸다. 아까 예즈를 만났을 때 받은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는데 그녀는 꽤나 활발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지구 곳곳의 웅장한 자연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더 많이 움직이고 자연에 나를 더 내어놓는 선택들을 해야지. 그리고 더 사람들과 어울리는 태도를 가져야지.


오늘은 밤에 디렉터와 회의하는데 와이키키에서 팡팡팡팡 폭죽이 터졌다. 예쁜 볼거리가 있었나 본데 너무 궁금했지만 창 밖으로 나가볼 수가 없었다. 회의 내내 말을 해야 해서 마이크도 카메라도 끌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쨋든 이렇게 일하고 오늘도 끝. 내일은 다시 한국 현충일이라 쉬는 날이라 넘나 신난다!





오늘은 현충일. 아침 파도도 오늘도 너무나 좋았다. 한국 가면 완전 장판일 텐데 이 파도 아른거려서 어쩌나 싶다. 아침에도 신나게 타고 나왔다. 요즘은 한 달 살기 막바지라 확실히 조금 지쳤다. 만성적인 팔의 통증과 피로가 생겼지만 그래도 파도를 생각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에 에드는 캘리포니아의 집으로 떠났다가 여자친구와 영국으로 여행을 간다. 3주쯤 뒤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이제 안녕이다. 떠날 때가 다 되어서 서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는데 에드가 계속 메일로 자기 유튜브에 서핑 드론영상 찍힌 거 보내준다. 답장을 안 해도 하나씩.. 하나씩...ㅋㅋㅋㅋ 뿌듯한가 보다. 귀여운 에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9시쯤 또 파도가 없어져서 후다닥 나왔다. 토요일에 못 먹은 브리스킷이 먹고 싶어서 집 앞 바비큐 플레이트를 먹으러 갔다. 이곳도 여기 있는 동안 몇 번 갔는데 이제 아마 마지막일 거다. 포장해 와서 6층 공용 테라스에서 먹었다. 브리스킷 자체가 엄청 맛집에서 만들어진 느낌이기보다 전반적으로 조화가 자극적이지 않고 좋았다. 역시 본토의 음식이니 짬바가 다르다.


테라스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여기 있는 동안 이 건물에 포함된 수영장도 헬스장도 사우나도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겸사겸사 처치곤란인 등 색깔 맞추기 위해 수영장에서 조금 자다가 뭉그적 일어나서는 1층 카페에 가서 아사이볼을 먹으며 책 보고 글을 썼다. 그러고 한숨 자고 오후 서핑을 갔다.


여섯 시에 맞춰 갔는데 샵에 보드가 없어서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본 리키가 같이 얘기하면서 도와주고 기다려주었다. 좋은 사람들.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기꺼이 써준다. 어쩜 그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을까. 차례가 되어서 보드 받아서 바다로 나왔는데 사람이 진짜 너무 많고 파도 너무 두꺼워서 잡히지 않았다. 명불허전 와이키키의 오후서핑이다.

서핑고수 리키가 한 일곱 시 반부터 좋아질 거라고 했으니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간조였다가 만조로 바뀌는 중간이 좋다고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 즉 간조에서 2-3시간 후가 좋고, 만조에서도 2-3시간 후가 좋다. 오늘 4시 정도가 만조(0.7m)였으니 저녁 늦게 가 좋을 거라고 한다. 역시나 해가 지기 시작하니 좋아지기 시작한다. 팔은 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좋아서 또 열심히 타고 나왔다. 멋진 석양을 보다가 감탄하다가 파도 타다가 하며 하늘이 어두워지는 줄 모르고 탔다. 오늘도 이렇게 좋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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