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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n 04. 2021

나의 마지막은, 여름

안 베르


쌀쌀한 봄날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써 보는 이야기. 아직은 차가운 봄날, 베란다의 캠핑의자에서 담요를 덮고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보면 추운 공기 속 나른한 햇살, 그리고 잘 가꾼 앞마당 속 풍성한 연보라 라일락꽃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제목에 이끌려 읽을 법한 이 책은 루게릭병에 걸린 작가가 마지막 보내는 봄과 여름을 무덤덤하게 남긴 글이다.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비참해진 모습을 무덤덤하게 읊는다. 중간중간 북받쳐오르는 억울함과 악에 바친 모습까지.


자신의  구석구석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녀에게 몸이 머리를 배신하고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보는 일은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존엄사의 합법화를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힘쓰다, 벨기에의 병원에서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한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딸과 남편 남겨둔채로.


나는 생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죽어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역설적이고 얄밉게도 나는 그 때 그 햇살 아래서 멀쩡히 책을 읽고 있는 스스로가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사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일상, 나의 움직임, 땀흘린 후의 성취감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만 하더라도 나의 삶이 가치있을 지 고민됐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원동력은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것이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즐거움의 많은 부분은 움직임에서 나온다. 햇살아래를 산책하기, 러닝, 수영, 서핑하기 등 내가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대부분 움직일 때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디스토피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유는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언정 혼자만 움직일 수 없는 삶 또한 그녀에게 디스토피아였을 것이다. 끊임 없이 차오르는 박탈감과 대상 없는 원망스러움, 고통스러움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움직일 수 없는 육신에 갇히기에는 그녀의 영혼은 너무나 자유롭다.


그녀의 결단과 의연함, 변화를 위한 움직임 모두에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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