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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May 18. 2021

밀도 있게 일하고 싶어

프리워커스 - 모빌스그룹



나의 행동들이 그 자체로 의미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괴로운 일도 거기서 조금의 의미라도 찾을 수 있으면 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깨어있는 삶의 절반을 일한다. 일이 돈만을 위한 것이라면 내 절반의 삶의 유복함을 위해 나머지 절반은 피폐하게 희생하는 거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더 나은 경력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써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모베러웍스는 이미 나의 고민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해결책을 찾았다. 그들은 이미 한 번 일의 밑바닥까지 가 본 사람들이었다. 스스로를 까맣게 불태워 보기도 하고 한 없이 무기력해보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떤 태도로 일할 때 의미 있는 지, 즐거운 지 깊게 고민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베러웍스다. 그들은 말한다. "스스로 추구하는 활동으로서 일을 할 때 하루는 생산적으로 채워진다. 역설적으로 일에서 자유와 의미를 찾을 수록 더 성취한다"고.


내 삶의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 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삶에서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다. 늙어서도 회사에 매여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은 자아효능감을 얻는 과정이고, 몰입할 수 있는 객체다. 늙어서 나는 스티커를 만들 수도 있고 빨래방을 할 수도 있다. 단지 중요한 것은 내 시간으로 의미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그 의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에서 가장 마지막 옵션은 나를 소모시키며 일하는 거다.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최소한 나를 깎아내지는 말아야 한다. 물론 베스트는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일만큼 give & take 가 명확한 것도 없다. 내가 시간과 고민을 쏟아부으면, 일은 나에게 돈과 의미감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나에게 의미감을 주는 것일까? 어떤 것이 나에게 의미감을 주는 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뭘 원하는 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빌스워크가 제안한 방법을 욕망을 측정하는 것이다. 욕망을 알아야만 내가 무엇을 바라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질투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탄성이 나왔다. 아, 내가 억누르려고만 했던 그 감정, 그 감정은 사실은 내 욕망 때문이구나 싶었다. 질투는 사실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감정 아닌가.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내 마음에서는 질투가 나오곤 한다. 가끔은 너무 작아서 그게 질투인 지도 모르고 또 가끔은 너무 강렬해서 상대방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꽤나 애써야 한다.

하지만 질투를 왜 나에게까지 감추어야 했을까. 질투를 통해 내 욕망을 알 수 있다면 그 자체도 큰 성취다. 나를 잘 보살펴줘야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듣고 이해해줄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질투하는 대상은 무엇인 지 생각해보자면, 나와 비슷한 시간을 가졌는데 훨씬 더 많은 일을 해 내는 사람,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금새 친해지는 사람, 한 번 이야기를 듣고 핵심을 파악해 내는 사람, 또는 나 빼고 친구들이 저녁을 먹는다고 했을 때, 등 다양한 사람과 상황에서 느껴진다. 다만 다른 감정과 섞여서 질투인 지 깨닫지 못했거나, 억눌렀을 뿐이다. 질투를 활짝 열어 꺼내어보자. 그 질투를 나에게만은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다독여주자. 이게 내 욕망을 아는 시작점이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의미감이 어떤 것인지 아는 첫걸음이다.

고민한 결과. 나에게 의미를 주는 일들은, 나를 관계적으로 성숙하게 할 수 있는 일(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이며, 나의 상황판단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의미감은 단순히 "무슨"일을 하느냐 만이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일하느냐가 사실 더 큰 의미를 차지한다. 최근 나는 today I learned라는 챌린지를 하고 있다. 내가 일하며 느낀 점, 배운 점들을 적고 회고하며 내가 겪었던 일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지 않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배울 점을 얻어가는 챌린지다. 거기서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다들 한결같다. 화가 나거나 속상한 상황이 있었어도 거기서 반성할 점을 얻어가며 pm, po로서의 본인의 책임감을 다잡는다. 이런 태도가 우리를 성장하게 하며 일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이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내 일에서 더 큰 의미를 생성해 내는 방법으로 기록만한 것이 없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다.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만드는 사람들만 기록을 하는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먹는 걸 기록하는 내 친구 지금 책을 기록하는 나 모두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기록은 각 잡고 기록하면 오히려 지속되지 않더라. 가볍게 해야 자주한다. 그냥 한 문장 쓰는 거다. 아님 그냥 사진만 찍어 두는건다. 이런 맥락으로 인스타그램은 사진만 올릴 수 있게 해 두었고 트위터는 글자수를 제한했다. 중요한 건 기록의 퀄리티가 아니라 빈도와 지속이라는 점을 점점 더 깨닫는다.


“기록을 하는 편이 낫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가끔은 이런 낙서를 누가 읽을까 싶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으로 작은 금괴를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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