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사람들은 꿈이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공허해졌다. 나는 꿈이 없었다. 이제 나이 서른, 인생 phase3에 들어서며 우리 모두 앞으로의 방향을 정할 때이다. 누군가는 결혼해서 안정감에 젖어들기도 했고 누군가는 일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기도 한다. 누군가는 점점 더 스스로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 모두 같은 삶을 살지만, 꿈꾸는 미래는 달랐다. 누군가는 주부가 되어서 조용히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하길 원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콜렉션을 전시해 놓을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또 누군가는 본인의 브랜드를 하길 원했고 누군가는 사람 만나는 일이 좋아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길 원했다. 대안학교를 만들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100억을 모으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변두리 어딘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지도 못하고, 지금 하는 일은 타성에 젖어들고 있다. 나의 삶은 이렇게 멈춰있다. 정말로 멈춰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편이고 좋아하기 시작한 것에도 깊이는 빠져들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일상에 어떤 흔적을 미치게끔.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다. 누군가는 꿈을 향해서 열심히 방향키를 조정하고 있을 동안, 나는 내 삶을 표류하게 두는 것일까봐. 이대로 정신 차렸을 때는 내 삶이 암초를 만나서 멈췄을 때도 그대로 둘까봐.
그래서 그런지 내 꿈의 연대기는 짧다. 대학생 때는 카페를 차려서 일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커피가 좋았고 카페에서 일을 많이 해 봐서 왠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카페는 못 했겟다 싶다. 가만히 손님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써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하는 시간을 짧게,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 작년 주4일제를 했을 때처럼 아무랑도 메신저도 하지 않은 채 다다닥 일만 하고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모든 곳을 가기에는 나의 하루는 짧다. 한 때는 필라테스 강사가 되는 것도 생각을 해 봤다. 일을 하면서 내 몸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도 그런 직업을 가지는 친구가 생기고 이야기를 해보면, 그것은 영업에 더 가까웠다. 역시 남의 돈 버는 것은 어려웠다. 여행하는 것이 좋아 스튜어디스나 지상직을 꿈꾸었던 적도 있다. 주변에서 스튜어디스가 잘 어울린다거나 필라테스 강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 때는 남들의 말 몇 마디에도 내 꿈이 생길 만큼 미래에 대한 목표가 없었다.
전에 보영이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 뭐냐고. 나는 서핑과 글 쓰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나의 꿈은 소소하게 디지털노마드가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사람. 소소하게 아침저녁으로는 서핑을 하면서, 점심 때는 일을 하는 사람. 전에 BJ포그가 쓴 습관의 디테일 이라는 책에서 마우이에 살며 서핑하고 책을 쓰는 그의 삶이 아주 인상깊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라는 책을 보며, 글을 쓰거나 달리기를 하며 여기저기 옮겨 사는 그가 참 멋졌다. 나의 삶도 그들의 삶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언젠가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자유로운 곳에서 일하며, 양양, 다대포, 혹은 발리, 치앙마이 등에 지내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그리는 멋진 나의 미래는, 서울에 거점을 두고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 이동하며 노마드로 살기.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서핑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보드는 내가 캐리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운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업무도 잘 해야 한다. 미래에 내가 원하도록 살 수 있으려면 직업도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향후 5년 간 내 목표는 업무를 잘 하는 것에 치중할 것이다.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도록, 나이가 들어도 일이 없어서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는 일을 해야한다. 그 능력의 기반은 바로 지금 만들어진다. 지금 치열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래의 나의 역량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5년 간의 나는 내 일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하고 혼자서도 어느 파트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역량을 쌓을 거다.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생각해서 문제를 정의할 것이다. 또한 시스템을 깊게 파서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할 것이다. 모든 일에는 대비와 준비가 필요하고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할 때도 준비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최근 느끼고 있다. 일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게 있다. 혼자서 지내도 외롭지 않기.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외로웠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아있었다. 좋은 걸 봐도 혼자서 삼키거나 엽서에 남기기에는 왠지 아쉽다. 정말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이상, 혼자 여행하는 일에서 빠질 수 없는 능력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도 즐겁게 지내는 능력"이다. 나는 이 능력이 없어서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혼자 다닌다. 어릴 때는 그래도 조금 더 열려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5년 전의 나보다 조금 더 귀찮음과 불편함에 취약해졌다. 이에 반해 야니는 전혀 새로운 곳에서도 잘 지낸다. 인상적이고도 부러웠던 것은, 나와 같은 시기에 유럽으로 여행갔을 시절, 그녀는 게하 프론트의 어떤 걸과 친해져서 매일 놀러다녔고 나와 같은 서핑샵에서도 친구들을 만나 곧잘 놀러다녔다. 나도 그 서핑샵에서 어떤 네덜란드걸과 자전거를 타고 놀러다녔지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왠지 불편하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알아야 나도 마음이 편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혼자 하는 여행은 조금 외롭다. 아마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나와 오래도록 지낼 수 있는 지 끊임 없이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미래는 나도 어찌될 지는 까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내 일에서 일에서 더 깊이 고민하는 전문성도 쌓고 싶다. 그와 동시에 운전과 요가를 배우고도 싶다. 혼자 어디에서든 잘 살고 잘 운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도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 그렇지 못한다면 혼자서도 공허하지 않게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 미래의 나 또한 좋아하는 것을 잔뜩 하면서 시간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 삶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 수 있도록 꾸준히 키를 잡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