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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Nov 06. 2021

반셀프 인테리어를 업무처럼 했더니

모든 프로젝트 매니징의 본질은 동일하다

우당탕탕 어쩌다가 반셀프를 진행했지만, 진행 중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인테리어 프로젝트도 결국은 내 업무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일련의 작업의 조합을 진행하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전문가들을 요구사항을 정의해서 요청드리는 점이 말이다. 작업을 함에 있어 나의 재량이 생각보다 요구사항정의에 많이 쓰여야 한다. 필요한 사항을 명확하게 발견하고 정의하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 나올 수 없다. 어떤 프로젝트든 이 사실은 본질로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는 주방 뒤 작은 방의 문열림 간섭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작은 이 방을 최대한 넓게 쓰고 싶었기에 문이 여닫히는 공간이 아까웠다. 해결책으로 슬라이딩 도어 등을 고민하고 검색해 보았는데, 슬라이딩도어는 비용이 비싸고 미관상 예쁘지도 않았다. 이걸 위한 해결책은? 문을 바깥쪽으로 여는 것이었다. 문틀에 조금 수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슬라이딩도어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간섭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다. 문을 바깥열림으로 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하면 깔끔하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한편 요구사항이 없거나 명확하지 않으면 분명 나중 가서 수정사항이 필요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내게 된다.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만 딱 맞춘 듯 만족스러운 결과는 요구사항이 명확할 때만 나오는 것이다. 나는 목공 즈음 부터 갑자기 예기치 않은 면접준비와 모더나 2차접총까지 겹치면서 엄청나게 정신 없는 시기를 보냈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놓은 것이 인테리어의 세부 요구사항 정의였다.


그 결과 목공 부분에서 나는 거의 요구사항이 없다시피 했다. 문틀은 이후 셀프페인팅으로 문틀을 처리할 거였는데 사장님에게 이 부분을 전달하지 못하여 나중에 작업하기가 어려워졌다. 이후 작업에 대한 예측되는 우선순위가 없다면 편한 소재로 마감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페인팅하기 번거로운 자재가 선택되어 난관이 예상된다. 또한 전기도 어느 위치에 어떻게 넣을 건지 생각하지 않아서 입구방에는 쓰지 않을 전선 줄이 나와 있으며 스위치도 아직 달랑거리는 상태로 있다. 문을 바깥열림으로 요청드리는 것도 결국 잊었다.


프로젝트의 세계에서 "알아서"는 없다. 가끔 가다가 알아서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건 그 분들이 능력 있는 분들이고 신경 써 주셔서 그런 것이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명확한 요구사항을 전달드려도 원하는 대로 나올까 말까 하는 것이 보통의 상황인 것이다. 작업자분들은 PM이 요청하는 사항을 해결해 주시는 분들이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온전히 PM의 몫이다. 반셀프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나는 PM이었다. PM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마지막 사람이다. 그런 내가 손을 놓자 이렇게 구멍이 많이 난 것이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오히려 내 업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인테리어를 업무처럼 하면 되는 거였고 업무를 인테리어 했듯이 하면 되는 거였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이 서핑을 금방 배우듯이 사는 동안은 몇 가지 본질만 익히고 있다면 나머지 일들은 수월하게 풀려나가는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큰 사실을 익힌 것 같았다. 반셀프인테리어로 얻은 것은 예쁜 집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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