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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Mar 18. 2022

이직한 지 3개월, 의식의 흐름

증명

새로운 회사에서는 나를 증명하는 것 투성이다. 처음부터 다시 나의 능력, 인성, 신뢰가능성까지 모두다 증명해야 한다. 매일매일이 너무나 길고도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의식적으로 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것조차 증명하려고 하는 것 같다.


닥치는대로

요즘은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산다. 목표를 가지고 살기 보다 그냥 매일매일 주어진 일을 하고 억지로 필라테스를 가고 약속은 금토에만 잡고. 날 잡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대접하고 싶지만 일을 벌리기가 귀찮다. 반대로 약속이 있을 때면 친구들과의 모임은 우리집으로 불러서 그냥 시켜먹게 된다. 이러면 이동시간도 아낄 수 있다.


효율

맛집을 찾는 시간도, 옷을 사기 위해 고민하는 에너지도 모두모두 아깝다. 아침에는 30분 정도 핸드폰을 깨작깨작 만진다. 준비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최대한 누워있는다. 원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했지만 요즘은 정말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에너지도 아깝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시간에 인색한 사람이 되었을까?


자린고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시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과 동시에 더 나은 일을 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었다. 나는 남들을 위한 나눔과 나를 위한 성취를 두 개 다 지탱할 그릇은 아니다. 때때로 둘 중 하나씩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세뇌

성취에 집중하고 있는 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다가도 조금씩이나마 내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떠나고 나서도 새로운 괜찮은 일을 하기 위해서 아둥바둥할 내 모습에 벌써 숨이 막힌다.


일과삶

나는 회사가 끝나면 일을 생각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도 못 하고 온 일이 생각난다. 내일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해야지,,하며 다짐하고 얼른 잠에 든다. 하지만 막상 일어나면 컴퓨터 앞으로 가기가 너무 싫어서 밍기적대다가 시간을 보낸다. 머릿속으로는 해야 할 일을 되새기고 마음은 불편한 채로 눈은 스마트폰 화면 속 별 볼 일 없는 웃긴 일들을 따라가고 있다.


수영복과 컴퓨터

살이 쪄서 좋아하는 옷을, 수영복을 입기가 곤란해진 내 몸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별다른 행동의 변화는 없다. 더 급한 건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고, 나에게 필요한 건 괴로움을 마비시킬 디저트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해 내는 일들은 마음에 든다. 나를 망가뜨리면서 하는 일들은 가치 있는 일일까?


한국 워킹홀리데이

나는 요즘 워킹홀리데이에 왔다는 생각을 한다. 워킹홀리데이에 왔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일하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워홀보다는 업무시간도 적지만 영어로 업무할 수 있고 돈도 워홀보다 더 많이 받는다. 친구들도 종종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워홀 일자리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단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회사의 친구들과는 나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을 것.


먼 미래

밀라논나의 에세이를 카페에서 어짜다가 보았다. 만족할 만큼의 성취를 이루고 편안함으로 돌아간 노장의 여유로움이 보인다. 과거의 힘듦을 영웅담처럼 늘어놓을  있는 그녀의 상황이 멋지다.  겪어본 자의 통찰이 보인다. 나도  미래에 저렇게 말할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만족이란 어디까지일까?


젊고 싶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라는 말이 있다. 공부도, 일도, 여행도, 운동도. 어떤 것이든 젊을 때 하면 흡수가 빠르고 마찰이 적다. 유연하고 효율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젊음은 한 번 뿐이다. 한정적인 젊음을 어떻게 쓸 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렸다. 지금 나는 30대이지만 내 인생에서는 가장 젊은 시기임에는 틀림 없다. 하나밖에 없는 젊음을 이렇게 일에만 투자하는 것이 맞나 싶다. 딱 1년, 딱 1년만 이렇게 일하자 라고 생각하다가도 내 삶을 더 소중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주변에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찾고 본인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친구들을 보면 조급하다. 나를 위할 시간이 없는데.


포케집 사장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지 고민을 했다. 회사에 쓰는 시간과 노력을  공간을 위해 쓴다면  많은 결과를 얻을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한다. 자영업을 하고 싶다. 나는 발리, 하와이, 서핑, 건강한 , 초록색이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케를 파는 소담한 가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 나를 소모시키는 걱정을 하지 않을 가게를 생각한다. 일단은 하와이로 포케 유학을 가는 상상을 한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선호한다. “엄마  포케가게 할거야" 엄마는 듣자마자 질색을 한다. “그렇게 공부해서 장사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다.

지친다

오늘은 유난히 더 지친다. 이제는 루틴을 조금은 잡을 만도 한데 그래도 지친다. 그나마 감사한 일은 재택을 해서 아무리 오래 일해도 잠은 충분히 잘 수 있다는 것이다. 잠마저 못 잤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생각하기도 싫다. 내 삶에서 일과 잠, 그 사이 주말의 휴식. 이것을 제외하고 뭐가 있을까 싶다. 매 순간을 가치있게 쓰고 싶지만 그 순간마다 내가 일순위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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