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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Mar 13. 2022

카페인과 마시멜로

비가 추적추적 내린 일요일 오후,카페에 책을 보러 왔다. 뭘 마실까 고민하다 따뜻한 아몬드라떼를 시켰다. 예쁜 잔에 나온 라떼를 한 모금 들이킨다. 달달한 시럽맛 끝에 커피의 씁쓸함이 맛의 조화를 잡아준다. 기분이 좋아진다. 동시에 저녁 잠에 대한 걱정이 덮친다. 오늘 저녁에는 러닝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잔을 저 멀리 밀어둔다.


나는 카페인을 먹으면 잠을 못 잔다. 몇 모금만 마셔도 새벽까지 꼬박 잠을 못 잔다. 고역이다. 정말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내 인생에서 커피를 떼 놓기는 힘들었다.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직장에서 못 견딜 때 즈음이면 카페를 열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의 마지막 보루가 있었기에 힘들어도 맘 한 구석은 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꿈도 더 이상 꾸기가 어렵다.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라니.


그럼에도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최고의 휴식은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책을 보는 것이다. 그랬기에 대학생 내내 카페에서 알바를 했고 엄마도 오래 전부터 카페를 운영해 왔다. 교환학생 시절는 벤티사이즈 아메리카노얼음가득 채운 텀블러를 들고 헬스장에 가던 행복한 시간을 기억한다. 찌인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시면 지겨운 러닝머신도 견딜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삼년 쯤 전 어느 날부터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자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저녁에는 커피를 안 마시기 시작했다. 머지 않은 어느 새부터는 점심에 커피를 먹어도 잠이 안 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진한 초콜렛음료나 녹차만 먹어도 잠이 안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환장할 노릇이다. 디카페인 커피를 찾아다니지만 디카페인은 큰 카페가 아니고서야 판매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포근한 분위기의 소규모 카페는 더욱이 디카페인커피를 판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마다 난감하다. 사실 나는 해답을 안다. 커피가 안 들어간 음료를 시키면 된다. 그게 애초에 나를 고민하지 않게 하는 길이다. 하지만 다른 음료를 시키면 왠지 탐탁찮다. 다른 음료는 배는 부르고 입은 달다. 허브차는 너무 밍밍하다. 결국은 계산대에서 말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먹고갈게요."


결국 커피를 시키는 나를 보며 마시멜로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마시멜로 테스트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마시멜로를 먹지 않은 아이들은 자제력 자체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해답은 상황설정능력에 있었다. 그들은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았다. 마시멜로를 안 먹은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쳐다보지 않거나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 충동과 직접 싸우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반면 마시멜로를 먹고 만 아이들은 마시멜로와 직접 마주하며 내면의 자신과 싸웠다. 결과가 빤한 싸움을 한 것이다.


후자의 아이들을 보면 딱 나같다. 지난 주에는 강릉에 여행을 갔다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아인슈페너가 유명한 카페에 가서 초코라떼 등을 시키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카페에 가지 않았다면 될텐데, 굳이 갔더라도 다른 메뉴를 시키면 될텐데,, 또 스스로를 카페인과의 싸움으로 몰았다. 여행이라는 보상심리가 더해졌기에 더욱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리 만무했다. 무려 한 잔을 다 마시고 말았다. 그러고는 밤이 너무나 걱정이 된 나머지 경포호로 가서 조깅을 했닼 모두 한가로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는 평화로운 그 곳에서 말이다. 운동화를 신고 갔기 망정이었건만 그러고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업보렸다.


커피를 먹을 때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나를 보며 붕어같다고 한다. 안 마시면 될 것을 왜 마시고 괴로워하는걸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딱 한모금만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시켰다. 결과가 빤한 싸움을 스스로에게 또 건다. 왜 얼마 안 되는 내 자제력을 결과가 빤한 곳에 써버리려 하는 걸까. 스스로가 불러낸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이런 나의 마음을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행복을 갖고 싶은 것이다. 따뜻한 커피가 디저트를 사르르 녹이는 그 느낌, 진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목을 타고들어가는 느낌, 그것이 나에게는 대체불가능한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잔에 아직 거의 가득찬 커피를 남기고 일어선다. 돈이 아깝다가도 내가 산 것은 음료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 나는 커피 딱 한 모금, 그 한 모금과 향에서 오는 만족감을 위해 돈을 낸 것이다. 오늘도 잔을 저 멀리 밀어놓고 혼자만의 싸움을 한다. 딱 한 모금만 더 마실까? 하며. 아마 평생 이런 싸움을 할 것 같아 암담하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의 한 모금이 내일을 얼마나 괴롭게 할 지 알기에. 이럴 줄 알았다면 젊을 때 더 먹어둘걸..

저 멀리 밀어둔 라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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