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신소장

내가 아는 가장 열정적인 남자에 대해서

by 콩나물

신소장은 호리호리하고 서글서글한 외모를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의문이지만, 어렸을 적 나는 신소장이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민정호(배우 지진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스쳐지나가며 보면 지진희가 약간 보인다. 첫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그랬던가. 신소장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 심지어 아버지와 딸임에도 키가 비슷하다. 누군가 키를 물어보면 160cm라고 주장하는 157cm인 나는 신소장과 나란히 서면 눈높이가 맞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반곱슬 검은 머리를 가졌다. 어머니의 찰랑이는 직모와 하얀 피부는 내 남동생이 가져갔고, 나는 신소장을 닮아 반곱슬에 피부가 까만 아이로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약간 인간 짜파게티 같다. (실제로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짜파게티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신소장도 곱실거리는 머리와 원래 그런 건지 그을려서 그런지 알 수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다.

또 같은 점이 있다. (혈육이기 때문에) 신소장과 나는 같은 O형이다. 대한민국의 전통 심리학인 혈액형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성격이 비슷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분류에 따르면 트리플 A형쯤 되지 않나 싶다. 동네 슈퍼를 혼자 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떨리는 아이(어릴 적 슈퍼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해서 오줌을 싼 적도 있다.)였고, 버스에서 하차벨 누르는 것이 창피해서 두 세 정거장을 지나쳐 가버리고 마는 아이였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신소장은 정말 오지랖이라는 말을 인간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지나가면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안녕하신교! 사모님은 잘 지내시고?”라며 큰 소리로 인사는 기본이며, 윗집 탁자 부러진 것을 고치는 것부터 아는 분의 어머니가 재배한 각종 작물을 사들이는 것 까지... 우리 동네에서 신소장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심리학으로 떠오르고 있는 MBTI에 따르면 신소장은 볼 것도 없이 E(외향적인 성격) 일 것이다. 그는 오래된 취미를 하나 갖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토요일이나 빨간 날 오후에 그 집에 없다면 십중팔구 스마일족구회에 갔다는 뜻이다. 예전에 그 이름은 감삼족구회였는데, 우리 집의 옆동네인 감삼동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서, 주로 집 근처의 공원에 네트를 치고 족구 연습을 하는 곳이다. 참여 멤버의 사는 곳이 점점 다양해짐에 따라, 감삼족구회는 더 포괄적인 이름인 “스마일족구회”로 바뀌었다. 유니폼은 이것보다 파란색일 수는 없을 것 같은 새 파란색이고 배에 커다랗게 노란색 스마일마크가 박혀있다. 족구회는 조기축구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만, 운동장을 격하게 누비는 축구 대신 네트 하나를 가운데 두고 족구를 한다는 것이 다르다. 족구는 축구보다는 다칠 염려가 적다. 축구가 생각보다 위험한 스포츠인 것을 아는가? 축구에서는 태클을 걸어 공을 빼앗는 게 규칙에 어긋나는 게 아닌데, 이 때문에 축구를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될 수도 있다. 아무튼 축구가 강하고 빠른 태권도라면 족구는 여유롭지만 날렵한 택견 같다. 족구는 여유롭고 강약이 있으며 리드미컬하다. 이크 에크 하며 서로 주고받는 대화와 비슷하다.

스마일족구회는 참여 연령이 다양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있나 싶은데, 실은 사십 대가 귀염둥이 막내고 칠, 팔십 대도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 주말이나 쉬는 날 모여 쉬엄쉬엄 교대해가며 술도 한 잔 하며, 밥도 먹어가며 한다. 물론 신소장은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술이던 두 잔 이상 못 마신다. 물론 신소장은 쉬엄쉬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스마일족구회의 손흥민이고 박지성이다. 족구장의 스트라이커고 두 개의 심장이다. 그는 단지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만 족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족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어마어마하고 사뭇 진지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족구대회가 있을 때면 그는 집중훈련에 돌입한다. 원래보다 일찍, 새벽에 나가서 더 늦게,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평소에는 일요일에만 하던 훈련을 집중훈련기간에는 토요일과 평일에도 한다. 그 노력 덕분인지 성과도 있었다. 작년 구청 주최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했다. 스마일을 외치며 어색하게 트로피를 들고 있는 그 사진은 지금도 그의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자리 잡고 있다. 족구 덕분에 그는 지금도 뱃살 하나 없는 작지만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족구회의 총무를 10년 이상 했다. 총무가 하는 일은 회원관리, 장부관리, 매주 무엇을 먹을 건지, 식사는 누가 준비할 건지, 이번 주에 연습을 할 건지 말 건지, 새 유니폼은 어디에서 맞출 건지, 대회 참여 여부 및 연습 일정, 회원 중에 누가 아프고 누구 딸이 결혼을 하고 누구 장모님이 돌아가셨는지, 누구랑 누구랑 저번에 말다툼이 있어서 그것을 조정하는 일 등등등이다. 그의 임무는 정말 막중하고 많았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걱정하고 그 걱정을 못 이겨 몸이 먼저 움직여서 결국 그 조직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린 사람. 그는 총무인데도 이 정도인데 더 무거운 일은 하기 싫어서 감투를 거절해왔으나, 작년에 (신소장의 말로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서) 회장이 되었다. 하는 일은 같았지만 책임감은 그만큼 더 무거워졌으리라. 비가 오지 않거나 부슬비만 약하게 오는 날이면,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연습 올꺼지예?”, “형님이 와야지!”, “허리가 아프다고? 내 묵는 약 하나 줄까?”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전화다. 그리고 으레 노란색 스마일마크가 있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바람처럼 나간다. 그리고 몇 시간이고 지나서 햇볕에 피부가 벌겋게 익은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주면 사촌언니가 결혼을 한다. 어릴 적부터 봤던 언니인데 신랑 되실 분이 인사를 오고, 또 결혼사진이 담긴 모바일 청첩장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조카를 보내는 신소장도 그랬을 것이다. 저녁을 먹던 중 그는 나에게 뜬금없이 신랑감의 기준을 말했다. 아빠는 한 가지가 딱 중요하다고. 무조건 족구를 해야 한다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결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당연히 족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신소장을 존중하고 웃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나는 스마일족구회의 영원한 등번호 1번 선수 신소장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뜨겁고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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