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서 설계업무를 한다는 것
난생처음으로 전재산을 탈탈 털어 유럽여행을 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은 왜 못생겼을까?
오해 마시라. 나는 서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서울은 어떤 도시보다도 다채로우면서도 깊은 도시다. 그러나 파리, 로마, 베를린을 걸을 때면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운 그 도시가 부럽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왜 내가 사는 도시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이 났다.
그 생각이 다시금 든 날은,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잠실 롯데타워 전망대에 갔을 때다. 한 사람당 이만 칠천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1분도 채 안 걸려서 도착하는 엘리베이터의 입장권을 사야 했다. 전망대에서 본 서울의 풍경은 솔직히 별로였다. 석촌호수나 멀리 보이는 한강을 제외하고 잠실 일대에 보이는 건 모두 아파트였다.
서울이 못생긴 이유로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역사, 빠른 개발과 정책, 산과 경사가 많은 지형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주범은 아파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전세게적으로 보면 아주 높은 비중이다. 심지어 아파트가 비싼 주거형태에 속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파트는 저소득층의 주거 형태에 가깝다. 나는 바로 그 아파트의 못생김이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건설사에서 아파트 디자인을 담당하는 팀에서 일한다. 주범을 잡아서 서울의 경관을 개선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일까?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아하는 일과 같이 지내고는 싶지만 너무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직업이다. 명함에는 설계 직무로 표현되지만, 우리 팀은 직접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디자인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아이디어나 콘셉트 등은 협의해서 진행하지만 디자인을 직접 하는 건 디자이너다.
디자이너와 달리, 관리자인 나는 그 프로젝트의 사장과 같다고 생각하며 일한다. 프로젝트의 일정, 예산, 시공의 편의성, 법적 적합성, 외부와 내부의 요구사항을 조율하며 입주민이 무사히 완성된 집에 들어가 만족하도록 돕는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설계사던 관리자던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모든 디자인이 그렇듯이, 공간을 더 아름답고 기능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심플한 목표 아래 나는 4년간 여러 고민을 했다.
디자인팀은 여러 설계사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업무의 시작은 각 프로젝트별로 협업할 설계사를 선정하는 데 있다. 설계용역에 대한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임의로 회사와 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정해진 공정한 방식에 따라서 입찰을 진행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가장 깔끔한 최저가 입찰방식을 택한다. 대략적인 용역 범위를 알려주고 용역비를 제출해서 가장 저가로 낸 회사가 선정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경우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좋은 디자인을 하는 데에는 정성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디자이너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팀은 디자인 평가 60%에 가격평가 40%를 합해서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설계사를 선정한다.
여기서 디자인 평가는 3개의 설계사가 일정 기간 준비한 디자인 안으로 10분 PT을 하고, 이것을 관리자 여러 명이 평가항목에 대해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런 방식이 경쟁을 통해서 좋은 디자인을 도출할지언정,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단, 불공정하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은 주관적일 수 있다. 사람은 각자 취향이 있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라도 평가가 다를 수 있고, 그 날 따라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이 평가위원으로 선정되면 그 디자이너는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이유로는 평가하는 사람들이 디자인만 보지 않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계안을 보고 평가를 하지만, 담당자들은 처음 하는 회사와는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회사의 매뉴얼을 잘 아는 회사와 협업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둘째,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 없는 갑질이 아닐까? 설계사는 디자인 PT를 준비하는데 약 2주 정도가 소요된다. 2주 동안 3~4명에 달하는 인원이 다른 일을 못하고 매달려야 하는데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선정이 되면 일을 하는 거지만, 탈락할 경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2주 동안의 디자인 기간은 없었던 일이 돼버리고 만다. 그리고 평가하는 관리자들이 디자인을 평가할 역량이 되는 건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든다. 겨우 4년 차인 내가 20년 넘는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으로 설계안을 바탕으로 하려고 하지만 스스로도 의심이 든다. 내가 디자인을 평가한다는 게 맞는 건지. 공정성을 위해서 한 팀이 아닌 여러 팀에서 참석을 하는데, 아예 그 분야를 모르고 머릿수 맞추기로 참석하시는 분들도 있다.
좋은 디자인을 하고 싶으면 디자이너를 존중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을 간절히 원하는 건 바로 우리 팀이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갑론을박한 일이 있다. 우리 팀에 추가 인원이 필요한데, 당장 신입사원을 받을 수는 없고, 다른 팀에서 오는 인원만 가능한 상화이었다. 한 분은 우리 팀에서만 10년을 근무하신 분이었고, 한 분은 3년마다 팀을 옮기며 근무하신 분이었다. 편의상 전자를 일편단심으로, 후자를 다재다능으로 명명하겠다.
�일편단심: 그 사람은 어려울 것 같은데... 이건 아무나 못 해. 전공을 하던지 최소한 자격증은 있는 사람이 와야 돼.
�다재다능: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 일은 어차피 관리직이야. 1~2년 배우면 웬만큼은 할 수 있어. 나도 몇 개월 배우고 바로 프로젝트 들어갔잖아.
�일편단심: 최소한 재료에 대한 건 알아야지. 알아야 재료를 고를 거 아니야?
�다재다능: 그런 건 얼마든지 외우면 돼. 아파트가 엄청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도 아니잖아. 아파트는 표준 디자인이 있잖아.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이 있으니까 공부하고, 새로운 것들만 조금씩 추가 해나가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일편단심: 디자인이나 재료는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것에 대한 철학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해야지, 단순히 그림이랑 가격을 보고 판단하면서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봐. 우리 고객들이 직원의 시행착오를 왜 같이 겪어야 해?
둘 다 맞는 말이다. 디자인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관리한다는 건 자신만의 철학과 경험, 배경지식이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좋은 디자이너를 만나면 보완이 되는 일이고, 실제 하는 일은 회사의 프로세스를 따라서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도록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사실 대학 때 배운 건 회사에서 하나도 쓸모가 없어서 모든 걸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다.
관리직의 장점은 이토록 넓은 범위를 두루두루 알게 되어서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에 있다. 설계와 시공과 견적을 모두 알게 되면 전체 비즈니스를 이해할 수 있다. 관리직의 단점은 넓은 만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연봉이 높아지고 정년퇴직 없이 자신의 사업도 시작할 수 있는 반면, 관리직의 경우 회사에서 나오면 인맥을 바탕으로 영업을 하는 영업직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디자인은 직접 해야 재밌다. 물론 같이 기획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결과가 나오면 뿌듯하지만, 직접 디자인한 사람에 비하면 '내 새끼'라는 마음이 덜 드는 건 사실이다. 나는 큰 조직의 톱니바퀴처럼 느껴지고,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우리 엄마의 최애 TV 프로그램은 SBS의 장수 프로그램인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유리를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항상 그렇듯이) 신기하게도 소화기관을 검사하니 문제가 없고 건강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는 이 프로그램의 모든 게 하나도 신기하지 않았다. 지구가 얼마나 넓고 인구가 몇십억 명이나 된다는데 당연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크면서 여러 가지 상식이나 편견을 갖게 되면서 다수와 조금 다르면 신기하고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고, 지금 생각하니 편견에 의해서 부끄러운 말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에 비해 내 세상은 더 좁아진 걸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디자인에 대해서도 내 세상을 좁히게 만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 팀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디자인의 D/B를 구축하는 공통 업무가 있었다. 이제까지 우리 회사와 경쟁사의 디자인 제안서를 모두 분석해서, 아이템을 추출하고 앞으로 프로젝트할 때마다 쓸 수 있는 D/B를 구축하는 작업이었다. 공부할 겸 하라고 내게 주어졌는데, 일 보다 힘든 건 여러 가지 제안서의 이미지에서 "아이템"을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아파트가 표준 디자인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공간 디자인은 그 공간의 주변 맥락과 땅의 모양, 사회적 수요 등을 종합하여 각 공간에 맞게 디자인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비슷한 것 끼리 묶어서 분류하려니 너무 어려웠다. 내 눈에는 다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주가 너무 여러 개가 생겼고 가져갈 때마다 반복해서 수정 지시를 들었다. 나는 공간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을 무슨 게임 캐릭터한테 무기 사주듯이 아이템 개념으로 넣었다 뺐다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도 낯설었다.
두 번째 난관은 그중에서 "특화 아이템"을 또다시 분류하라는 지시였다. 디자인은 다 좋고 특별하려고 하는 거지 특화는 또 뭔지. 상사에게 물어보니 일반적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강남이나 경쟁해서 수주를 해야 하는 특별한 단지에만 들어가는 아이템이니 특별히 비싸 보이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사우나는 대부분 단지에 들어가지만, 수영장은 큰 단지에만 들어가니 특화 아이템이었다. 나무 중에서는 소나무, 팽나무가 특화 아이템이었는데 수천 개가 넘는 종류 중에 왜 그것만 콕 집어서 특화 아이템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된 D/B는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쉽고 간단했기에 호응이 좋았는데, 정작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디자인은 매뉴얼을 만들면 만드는 순간 이미 늦다. 디자인은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트렌드를 반영해야 하는데,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단순하게 추린 아이템들은 특화가 아니라 이미 표준이 되어있었다.
무언가를 축약하는 것은 그 사이사이의 행간을 생략하게 되고 그렇게 단순해지고 평평해지고 우물 속에서만 하늘을 보게 만든다.
대표님이 유일하게 우리 팀에게 보고를 요청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가능한 단지별로 품질의 차이가 적도록 '상향 평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상품이 아니라 공간이기 때문에 이것이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회사의 방향이니 따랐다.) 대표님의 질문은, 같은 공사비에 표준 디자인인데 왜 가보면 품질이 다르게 나냐는 거였였다.
'표준 디자인을 적용해도 현장마다 상황이 다르고, 디자인 지침을 지키는 정도가 달라서'가 답이었으나 어쨌든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여러 변수를 검토해봤다. 좌측에는 그 해에 준공한 모든 현장을 리스트업하고 그 현장의 최종 품질평가를 상/중/하로 구분했다. 우측에는 예상되는 여러 변수를 적었다.
예상을 비껴갔던 건, 공사비였다. 가장 품질과 관계까 없었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품질이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는 다 품질과 관계가 있었다. 단지 위치, 단지 규모, 공사기간, 디자이너의 역량, 관리자의 역량, 시공자의 역량은 일정 부분 영향이 있었다. 문제는 이제까지 내 상사들이 모든 품질의 이유를 임원에게 공사비를 바탕으로 설명해왔다는 데에 있었다. 그렇게 해야 가장 단순하고, 관리자의 역량 등의 이슈로 불똥이 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보고는 억지로 공사비에 대한 영향으로 결론을 도출했고, 그에 대한 논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크게 망했다.
어떤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는 예산이 반드시 필요하고, 적정 수준을 미리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디자인은 금액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게 논리적으로 쉽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 예산이 핑계가 될 수도 없다. 디자이너는, 그리고 디자인을 관리한다는 것은 그런 한계를 훌쩍 넘어섰을 때 의미가 있다.
아파트의 디자인이 어려운 이유는, 아파트는 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면서 그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많게는 몇 천명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소 장각의 프라이버시와 특별함은 보장해주어야 하지만, 모두의 취향을 맞추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파트 디자인은 보수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재미없는 디자인이 된다.
최근 젊은 건축가상을 비유 에스 아키텍츠 박지현 소장이 말한 이야기가 공감이 된다.
일반적으로 다가구주택은 임대를 목적으로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위한 보편적인 공간을 설계해야 해요. 다시 말해, ‘취향’을 타면 안 되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진짜 보편적인 공간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사실 누구나 살기 좋은 공간은 별로 없거든요. 누구든 자기만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누가 살아도 딱 들어맞지 않는 어중간한 집이 되어 버려, 집 안에 버려두는 공간이 생기거나 거주 환경의 쾌적함이 떨어지기도 하죠. **
또한 힘들게 얻은 집이니 모두 내 앞마당만 생각하게 된다. 주변 도시와의 맥락이 어떻든, 우리 아파트의 로고가 제일 잘 보이고 가장 화려한 조명으로 감싸는 것을 요구한다. 그 단지에 맞지 않더라도 옆 단지에 중국풍 수경시설이 있으면 우리 단지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반영해달라고 요청한다. 집이 주거보다는 자산의 개념으로 인식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유입을 거부하고 담장을 둘러버린 탓에, 골목길이 있었다면 재미있게 갈 수 있는 길을 담장 옆으로만 빙 돌아서 가서 도시의 경험이 더 단순해지는 측면도 있다. 아파트는 대부분 여러 개의 블록을 합쳐 대단지를 이루기 때문에 보행자에게는 큰 벽이 생기는 것과도 같다.
한 명의 취향을 만족하면서도 모든 입주민이 좋아할 수는 없을까. 입주민이 좋아하면서 동네의 모든 사람들도 좋아할 수는 없을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 한국 가구 절반은 아파트에 산다… 거주 비중 50% 첫 돌파, 동아일보, 2019.08.29. (Url: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90829/97174874/1)
** 습관을 짓는 젊은 건축가들, 브리크 Brique Magazine. (Url: https://magazine.brique.co/article/%ec%8a%b5%ea%b4%80%ec%9d%84-%ec%a7%93%eb%8a%94-%ec%a0%8a%ec%9d%80-%ea%b1%b4%ec%b6%95%ea%b0%80%eb%93%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