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하다>시즌1 - 12화
쿠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3년간 사귄 깻잎과 이별을 했다고 했다. 쿠민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쿠민은 엄청나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는 쿠민의 모습이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호흡 속에서 느껴졌다.
5년 전인가, 아주 더웠던 어느 날 살벌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해변 언저리에서 바지만 살짝 걸치고 다르부카를 연주하던 쿠민이 다가와 내 얼굴에 물을 한 바가지 뿌려줬다. 어찌나 짜릿하던지, 쿠민의 주저 없는 스냅으로 물이 경쾌하게 온 몸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쿠민과 친구가 되었다. 쿠민은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다. 몸집은 작지만 눈이 맑고 커서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쿠민의 감정 상태를 읽을 수 있었다. 쿠민은 매사에 당당하고 겁이 없는 듯 행동했지만, 조금만 노력해서 바라보면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였다. 쿠민은 원래 당당한 게 아니라 용기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루는 쿠민의 공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어슷선 홍고추로 적당히 멋을 부리고 갔는데, 다르부카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쿠민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깨물어주고 싶었다. 쿠민을 사랑스럽게 본건 나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흙칠을 하고 온 깻잎의 눈에도 쿠민은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었고, 나는 종종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파티에서 춤도 추고 놀았다.
쿠민과 깻잎이 연인이 된 이후로 쿠민과 점점 멀어졌다. 쿠민과 깻잎이 껴안은 채 음악에 맞춰 춤추던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하기도 했지만 왠지 쿠민을 깻잎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로 이제 쿠민과 깻잎은 연인이 아니다. 둘만의 춤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됐지만 쿠민에게서 이렇게 연락이 와서 좋다. 쿠민과 놀 수 있어서 좋다.
오디오 클립 링크 - 12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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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하다> 시즌 1이 12화로 막을 내립니다.
후기와 다음 시즌2에서 만나요.
콩나물하다
글. 고권금, 허선혜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