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의 힘

by 공삼

1996년 프랑스에 처음 도착해서 국내선을 타고 클레르몽페랑에 도착했을 때 밤이었다.

당시에는 언어연수를 갈 경우, 대부분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출발 당일에 만난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고 우리는 밤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잠시 후, 우리를 데리러 온 현지 한국인 한 분이 오셔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각자 돈을 내라 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사람은 인솔자가 시키는 대로 돈을 내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기숙사에 도착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한 명이 낸 돈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돈인데, 인솔자가 두 명분의 돈을 In my pocket 한 것이다. 결국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속인 셈이다.

뭐 어쩌겠나?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가 바보였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인솔자는 그렇게 돈을 벌어서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다. 상세한 이야기는 모르겠는데 안 좋은 일로 왔다고 들었다. 어쨌든 요즘과 같이 정보를 잘 확인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어쩌면 모르다는 것이 결국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밤 중에 기숙사 안내하시는 여성분 도움으로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짐을 풀고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두운 조명과 싸늘한 기운의 방이 왠지 아늑한 보금자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불편한 첫 분위기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며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공기관에 가서 체류증 신청 및 보험 신청 그리고 은행계좌를 열어야 했기 때문에 자면서도 긴장을 했다.


새벽이 되었다.

아직 기숙사를 나가서 일을 보려면 4시간이나 더 있어야 했다. 식사 시간도 한참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대충 짐을 정리하고, 내 방 번호를 메모하고 복도로 나왔다. 아직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흔히 좀비 나오는 영화 같은 분위기랄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복도를 걸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 로비로 향했다.

로비와 식당, 뒤뜰, 어젯밤에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몇몇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출근을 하려나 보다. 날이 꽤나 추운 겨울인데 눈 덮인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한국이나 별반 달라 보일 것이 없었다. 한참을 밖을 쳐다보고 있으니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으면 바로 집일 것 같은 생각이 벌써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내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Bonjour! Je peux passer?


엉겁결에 "아 네 Bonjour"라고 대답을 했다. 적잖이 놀랬다.

나는 놀라서 얼른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한테 인사를 한 것 같은데 다음 말이 뭐였지?라고 한참을 생각을 했다. Je peux passer? 내가 지나갈 수 있을까요"라는 뜻인데, 며칠 뒤에 그 말을 알아 들었다.


나는 함께 온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하러 다시 만났다. 그리고 전날 인솔자와 안내하셨던 분이 알려 준 방법대로 식사를 하기로 시작했다. 전부들 눈치로 보고 있었고, 그나마 내가 불어과를 나왔다고 나를 앞 세워 식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Bonjour? 나도 Bonjour.

그냥 줄을 따라 들어갔는데, 배식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마다 Bonjour라고 인사를 했다. 당연히 나도 Bonjour로 인사를 했다. 물론 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마치 죄인처럼 배식을 받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으려 할 때도 Bonjour!

밥 먹고 있는데 Bonjour,

다 먹고 나서 나오는데도 눈만 마주치면 Bonjour,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Bonjour였다.


너무나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날이라서 학교로 가지 전에 은행과 경시청에 갔을 때도 계속해서 Bonjour였다.


그날 하루는 한국에서 프랑스어 공부하면 처음 말하는 Bonjour를, 좀 과장해서, 5년 치를 한꺼번에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어느새 나도 Bonjour를 말하고 있었다. 처음 한 달은 테이프에서 배운 발음대로,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이곳 클레르몽페랑 오베르뉴 지방의 억양을 써가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베르뉴 지방은 우리나라 같으면 강원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전국에 걸쳐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지방이며 다른 지역과 억양이 다소 틀린 구석이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강원도인데 억양으로 보면 마치 우리나라 같으면 전라도 같다고나 할까?


대학 내 언어연수 학원을 다니면서 조금씩 말문을 트이고 이제는 그 어색했던 Bonjour가 일상이 되었고 한동안은 저녁 6시 땡 하면 Bonsoir로 인사하는 것을 신경을 썼어야 했다.


버스를 타도 Bonjour!

기차를 타도 Bonjour!

공원을 지나가도 Bonjour!

음식점에 가도 Bonjour!

시장을 가도 Bonjour!

화장실에 만나도 Bonjour!

특히 나이 드신 노인분들은 Bonjour는 필수 대화였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여전히 이렇게 Bonjour라는 인사를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면 1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시 방문했던 프랑스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소 남의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다.


서두가 길었는데, Bonjour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생각보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인사에 박한 것 같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핸드폰만 보고 어두운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 많기 때문이다. 마치 날 건들면 화를 낼 것이야 하는 그런 포스를 지닌 분들도 많다.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에 가도 학부모끼리 만나더라도 그냥 눈인사만 할 정도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많이 말로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 잘 지내시죠? " "좋은 날 되세요" 등등.

하긴 하루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남성이 "뭔가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라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로 같은 아파트에 사니까 인사하며 지내자고 한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러려니하고 넘겨버렸다. 그냥 웃으면서 좋은 하루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중에 뒤에 알았는데, 나보나 나이가 한참이나 어렸던 직장인이었다. 어쨌든 그 뒤로는 그 분만 타면 그냥 목인사만 하고, 그의 가족이 타면 인사를 한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사소하지만 아침 첫인사가 사람들 간의 벽을 제거해 주는 그런 중요한 것일 아닐까 하고...


사실 프랑스에 있을 때, 그렇게 인사를 해도 그뿐이었지만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적잖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일단 인사만 했을 뿐이지만 한 번은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가 되지 않았을 때는 몰랐지만 대화가 되면 평상시에 인사하고 지낸 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모든 정보는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지만, 당시에는 Petite annonce(쁘띳따농스)라는 게시판을 중심으로 정보를 교환했었다. 결국 그 게시판 앞에 모여서 정보를 나눠야 했고, 소통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언어 연수를 통해서 불어를 할 수 있게 된 것보다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해지는 법을 더 많이 배운 듯싶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 아니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어쩌면 그 말 많은 이유도 사람들 간의 벽을 없애게 해주는 Bonjour 덕분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첫인사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인사는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상호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없게 해주는 아주 현명한 방법이자 장치이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아침에도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분이 타셨다. 옆에 있던 딸아이가 "안녕하세요 아저씨"라고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안녕하세요"라고 답을 해 주셨다. 이미 그는 벽에 금이 간게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실소를 지어봤다.


인사, 생각보다 큰 힘이 서려있을지 모르겠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일 아침,,,, 의미가 없다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침인사를 한다면 어떨까?

빈말이라도 인사하고 격려하면 왠지 따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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