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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Sep 11. 2019

추석 때 힘든 이유

이 글은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운영했던 아카데미에 참석한 분들과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글입니다. 당시 노인분들을 위한 아카데미와 지역 내 CEO 아카데미, 그리고 사회 지도자층 아카데미를 운영한 바 있는데 다양한 계층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계기였는데요. 그때의 대화를 기억해서 만들어 본 글입니다.
명절을 지냄에 있어서 아래 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아래 글이 더욱더 공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래된 관습에 의해 가정에서 생겨나는 불화는 세대 간의 달라진 삶의 양태 때문이라 본다.

세대 간의 삶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농경시대의 경우 특별히 세대 간 불만이란 드물었으며 당연하게 따라야 하는 순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쳐 관습이 되고 전통이 되어갔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은 적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산업시대, 금융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를 거쳐 더 이상 농경시대에서 요구되는 가족의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이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생활양식이나 방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도 변해갔다.


여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세상은 빨리 변하는 것에 비해서 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매우 천천히 변해가기 때문이다. 무조건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볼 때 어차피 변화하는데 굳이 변화를 늦춰가면서 서로 힘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세대 간 불협화음은 어쩌면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돌아왔고 뉴스에서는 늘 똑같이 명절 증후군 이야기나 도래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요즘 시국이 복잡하다 보니 작년보다는 덜한 것 같다. 작년만 해도 지금쯤이면 시월드, 처월드, 얄미운 시누이, 짜증 나는 큰 형님과 동서들, 남편의 이기심, 아내의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가득했다. 심지어 가정불화, 이혼이라는 말까지...

이 정도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뜻일 텐데 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그대로 방치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변하고 싶은 사람과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 간의 문제라 본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기존의 변화가 불편스럽고 버겁게 느껴질 것이고 동시에 자기 자신이 설자리 없다는 것에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이다. 반면 변화를 바라는 사람은 하루빨리 변화를 바란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비판적인 생각과 시니컬한 목소리로 매번 날을 세운다. 하긴 이 또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이라 본다.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경우, 당신들의 관습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농경시대 문화와 산업시대 문화를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분들이 많았으며, 당시 시대적 배경도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명절과 제사를 미덕으로 삼았다. 특히 70대와 함께한 산업시대를 살아온 지금의 50대와 60대는 그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반해, 금융시대를 살았던 30대 40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고 있는 20대와 앞으로의 10대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명절에 대한 전통에 대해서 이전 세대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는 아니어도 많은 가정들은 여전히 서로가 눈치를 주고받으며 무사히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의 자식들은, 특히 4,50대, 어릴 때부터 착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의 말을 거역을 쉽게 할 수 없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입 다문 젊은 사람들을 보고 있는 부모와 어른들은 암묵적으로 잘 따라준다고만 믿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는 비용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살펴볼 수 있다. 극히 일부분에 대한 조사였지만 사회적으로 반영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WIKITREE, 2019년 9월 4일 자)

비용을 제외하고 보면, 20대와 30대는 지나친 관심이 스트레스고, 4,50대는 여전히 배우자 눈치다.

이처럼 누구나 좋아야 할 명절이 어느새 버거운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러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더욱더 깊숙하게 존재한다.

나이 든 부모는 그나마 명절 덕분에 자식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핵가족 시대에 이런 현상은 바로 옆집의 현상이기도 하다. 부모는 명절을 통해서 그들에게 익숙한 가족 내 안정화된 서열을 눈으로 봐야만 더욱더 행복해한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장면을 바란다. 장남이 집안을 진두지휘하고 아래 동생들은 말없이 장남을 따라야 하는 그 모습을... 게다가 여전히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그런 모습을... 그 모습을 보아야만 이전에 자신들이 살아온 모습이 옳다고 믿으며 어르신들은 심적으로 뿌듯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불편한 현상은 형제들 간에서도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아내들 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족의 경우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따로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잊고 지냈던 가족 간 서열 문제가 적잖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러나 서열은 가족을 구성한 이상 없앨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그 순간 남남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서열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힘들지 않게 사이좋게 사는 법은?


자식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들은 명절이 중요한 행사였고, 명절과 같은 집안 대소사를 통해 정을 나눴으며 자신의 성장과 가정의 안정된 모습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분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못살던 시대에 열심히 일을 해서 이 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그 무엇을 빗대어도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식들은, 잘 나가는 자식은 제외하고, 언제 눈치 봐야 하는 직장생활과 늘 부족한 교육비와 생활비로 늘 긴장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큰 가족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건사하기에도 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부모 세대와 다른 삶의 양태가 문제로 자리 잡는다. 우리 때 부모님들은 일해서 돈을 벌어 저축했던 세대라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돈을 벌어 자신의 계발을 위해 투자를 하는 세대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부모들은 자식들의 모습이 허영과 과소비로 보일 때가 있고 굳이 그런 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고 한다. 솔직히 부모가 볼 때 쓸모없는 행위에 들어가는 돈을 자신들을 위해서 좀 더 써 줬으면 하는 바람도 서려 있는 게 사실이다.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사업을 운영했을 때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 것임을 밝혀 둔다.


어쨌든 작년보다 심적으로 좀 더 나은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서로가 자기 욕심을 좀 더 버려야 할 것이라 본다. 게다가 뭘 버려야 할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시대와 달라진 현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자식의 몫이다. 가만히 입을 닫고 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답답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더욱더 문제를 크게 만들 뿐이다. 분명 가정마다 두 가지 이상의 문제가 있으리라 본다. 한 가지만 문제가 된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이라 말한 이유는 대부분이 복합적인 문제로 발달되기 때문인데 이럴수록 대화가 가장 현명한 답이라 본다. 그리고 필요한 적절한 행동도 요구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이 명절상을 준비한다거나, 설거지를 대신한다거나, 먹을 때 함께 먹는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서로의 행동에 악감정이 될만한 요소를 애초에 없애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모이는 자리에서 겸손할 필요가 있다.

같은 부모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누구는 잘 나가고 누구는 쪼들려 살 수 있다. 이로 인해서 서로가 많이 불편해질 수 있다. 부러움 때문이라 본다. 그런데 꼭 이런 상황에서 아는 척,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넘어가지만 사회였다면 정말 비호감일 것이다. 아마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들의 잘난 척하는 모습을 봤다면 당장이라도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까 싶다. 겸손은 비단 남과의 관계에서만 요구되는 행동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도 겸손은 늘 필요하다. 특히 각각 가정을 이루고 살기 시작하면 하나의 조직을 이루는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 전까지는 우리 가족이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남이었던 배우자와 함께 이룬 가정인 만큼 일개 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정에서 결정되는 모든 결정은 아내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명절이 되어 만나서 서로가 참으로 말을 많이 한다. 서로 격려하는 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없는 집일수록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도움을 받고 싶다면 굳이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평일에도 수 없이 많은 날들이 있었음에도 꼭 명절 때 자신의 바람을 눈에 보이게 숨긴 채 자기 애수에 젖은 한탄을 쏟아낸다. 힘들면 가족이 다 모이는 명절보다는 다른 날을 선택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본다. 모처럼 다 모인 자리에서 억울하고 힘든 소리를 하면 그 자리는 결과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한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보다 따뜻한 격려의 말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각자의 하소연보다, 각자의 바람보다는 상대의 하소연을, 상대의 바람을 먼저 들어주려 노력하고, 상대를 꾸짖거나 비꼬우거나 무슨 해법이라도 알려줄 요량으로 잘난 척하며 훈계하는 것보다 그저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고생 많았겠다. 다 잘될 거야 힘내"


그리고 이런 말은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해 준다면 좀 더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라 본다.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명절이면 좋겠다.







나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만들고 앞에서 말한 유사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내가 부엌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명절이 오면 내 아내를 명절 전날에 처갓집으로 보낸다. 처갓집 명절 준비는 아내가 가서 직접 하라고... 혼자서 장만하시는 장모님을 생각할 때 딸이라도 옆에 있으면 좀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일을 도와주고 아내는 따로 이동하여 시댁으로 와서 명절을 함께 지낸다. 물론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다시 처갓집으로 향한다.


아내가 자신의 집에서 장모님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내 집에서 본가에 가져갈 음식을 모두 준비한다. 어른들이 연로하신 이유도 있지만, 내가 직접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내가 싫어하는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본가에서 제사상이나 명절상을 준비하면 한 마디씩 거들기 때문인데 솔직히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옛날 일들을 곱씹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게다가 집 구조가 옛날 집이라서 불편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싫었다. 조금 편하게 하고 싶어서 방에서 하려 하면 냄새난다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치를 준다. 정말 속상했다. 누구는 힘들게 일을 하는 데 자신을 불편하다고 나가서 하라 하고...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나는 막내라서 일을 하고 아버지와 형은 남자라고 방 안에서 중요한 이야기라도 하는 양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막내일 뿐이지 남잔데... 어릴 때부터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편하게 방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정말 싫었다. 어쩌면 늘 일을 해야 했던 나의 과거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막내라서 웬만한 집안일은 내 차지였던 게 사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라떼는 말이야"... 정말 싫다. 정작 하지도 않을 거면서 자신을 내 세워서 하는 말이라고는 그리 영양가가 없는 말들 뿐이라 싫어한다.


이 때문에 나름 용감하게 내질렀다.


집에서 준비해 올 테니 그냥 편하게 계시라고... 하다가 못하겠으면 사서라도 오겠다고 장담을 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제사음식과 명절 음식은 모두 내가 준비해서 들고 간다. 맨 처음은 내가 만들지 않았다고 의심을 하셨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음식을 만든 장면과 완성된 음식을 찍어 놓았는데, 사진을 보고 그제야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게 생각이 난다. 게다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일부 음식은 보는 앞에서 만들어 냈었다.

두 분께는 북 쩍 거리는 명절 분위기가 상실되어 실망은 크셨으리라 본다. 하지만 매년마다 두 번씩 반복되는 영양가 없는 스트레스 유발 발언은 듣지 않아서 일단 나는 살 것 같았다. 조금 냉정해 보이지만 나의 스트레스는 사실 병적으로 치달을 뻔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대로 두면 내가 힘들겠다 싶어서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남들은 며느리가 시댁에 가면 머리 아프고, 속이 쓰리고, 화병 자리가 도진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것이 며느리는 팔팔하고 아들인 내가 더 아프고 힘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인데 바로 그 집이 나에게 시댁이 된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동안 아프지 않았던 편두통이 왔다 갔다 하며 속이 답답하다.


아울러 음식을 내가 다 하는 이유는 아내를 위한 배려이자 아내의 스트레스 예방 차원이다. 아내가 본가에 대한 화풀이도 싫었고, 더욱이 나쁜 대화로 인해 서로가 심적으로 상처 받는 것이 무지 싫어서였다.

사실 예전에 음식 장만하는 것보다 지금을 비교해 보면 조리기구가 좋아서 상당히 짧은 시간에 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며느리는 그것 또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곱게 자란 딸인데 시댁와서 큰 일을 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각자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사회에 나가면 박사님 소리를 듣는 아내가 집에 와서 노비처럼 일하고 있는데 어느 누가 마음 상하지 않을까? 물론 여성들이 미리 알아서 상대의 입장차를 고려해서 이런 데 와서는 이렇게, 저런 데 가서는 저렇게 하면 좀 좋겠지만 사실 나 자신도 그리 못하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생활에도 연륜이 싸여야만 그리 가능하리라 본다.


그래서 난 내가 음식을 다 만들어서 제사나 명절을 지낸다.

처음엔 이것으로 말이 많았지만 딱 1년이 지나니 이제는 본가 계시는 어른들도 편하다고 좋아하시고, 아내의 스트레스도 많이 사라졌다. 그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 끝날 일이었다. 한 사람이 책임을 지면 의외로 다른 사람들 간의 문제가 해소가 되지 않더라도 수면 아래로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 편익을 위해서 주변 환경을 이해하려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하셨던 부모님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아들이 알아서 준비해 온다는 것을 자랑하고 다니신다. 요즘은 그렇게 해야 한다면서... 그게 신식이라면서...


그렇게 우리 집은 내가 부엌일을 함으로써 제사나 명절 증후군을 극복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집도 방법은 틀려도 잘만 생각하면 그리고 잘 대화를 하면 분명히 명절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례를 종합해 봐도, 제사나 명절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발현된 것으로 가부장적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예의가 없을 때, 씨족사회나 부족사회, 그리고 국가는 예를 발현코자 제사나 종례와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형식을 만들었다. 주로 남성들이 사냥을 하고 주 생업을 이끌었던 존재였으며, 아울러 전쟁 속에서 남자의 위치는 가장 높았던 것이다. 그 역사는 다 잘 알다시피 매우 길어서 이제는 사람들 DNA에까지 서려 있다. 이렇게 뼛속 깊이 서려 있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수 천년을 이어온 가부장적인 요소를 단 몇십 년의 힘으로 바꾸기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나마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지금의 세대가 저물고 우리 아이들의 시대가 오면 달라질 확률이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 또한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같은 나이 때(40대 후반) 친구라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친구가 있으며, 그들의 생각이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를 볼 때 변화는 정말 더디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명절이나 제사 자체가 가부장적인 삶의 양태에서 출발했다면 결국 명절이나 제사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결국 남성들이 풀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이런 방법을 어떨까?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신 아버지를 필두로 남성들끼리 의논해서 여성들이 가지는 문제점을 논의해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문제점을 논의해서 나온 내용을 서면으로 적어서 가족이 함께 모여서 이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양보하는 계기를 가질 것이라 본다.


단 조건이 있다.

절대 술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면 끝까지 들어준다.

마지막으로 반론함에 있어서 언성을 높이는 것을 금한다. 


이리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좀 더 뜻깊은 명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보다 술은 먹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대화하기 전에 일체 술을 먹지 않도록 공포(公布)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술은 이성보다 감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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