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살다 보면 남에게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그 상처가 때론 나 자신을 위한 백신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떨 땐 심각한 부작용으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
요즘 들어 남에게 상처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사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주로 내가 먼저 상처를 주었거나, 상대의 무지에 의해서, 그리고 원래 악인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심각한 것은 그저 무조건적으로 맘에 들지 않아 괴롭히고 싶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에 남을 괴롭힘으로써 누리는 쾌락의 일종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방법을 말해 보고자 한다.
개인의 정서적 혼란은 대부분 비합리적 신념에서 유발된다고 한다. 비합리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주로 표출되는 특징으로는 당위적 사고, 과장과 자기 및 타인 비하, 좌절에 대한 인내심 부족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비합리적 신념의 경우를 Waters(1998)라는 학자가 9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만약 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다.
둘째, 만약 내가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나쁜 사람이다.
셋째, 모든 일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되어야 하고, 나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 한다.
넷째, 나는 모든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자가 되느니 차라리 도전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더 낫다.
다섯째, 세상은 공평해야 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야만 한다.
여섯째, 나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일곱째, 어른들은 완벽해야만 한다.
여덟째, 정답은 오로지 한 개만 존재해야 한다.
아홉째, 나는 꼭 이겨야만 하고, 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9가지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대개는 1~2개 정도는 사회인이라면 누구가 가질 수 있는 신념이다. 나의 경우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가 해당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남들보다 너무나 강하거나 여러 가지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사회생활 속에서 여러 방면으로 불만과 불평을 동반하며 자기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세 번째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되어야만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반드시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만 한다면 그렇지 못할 경우 흔히 말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게 된다. 결국,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닐 경우, 계속해서 불만 속에 살게 되며, 대인관계에서도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반대되는 사람에 대해 적대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어 결과적으로 남들에게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조화롭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외에도 나머지 8가지 비합리적 신념도 마찬가지라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사견으로 가장 조심해야 할 비합리적 신념은 첫 번째라고 본다.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첫 번째의 신념이 개선되지 않고 고착화되면 성인이 되어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의 성향은 남들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흔하다. 더욱더 장애가 되는 것은 일을 할 때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할 때 적잖이 안 좋은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남들의 평가에 따르다 보니 자신의 생각은 늘 뒷전이고 스스로가 피해를 입고 살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주로 주위 사람인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가족과 친구들이 불만을 잘 들어준다면 조금씩 개선될 여지가 있거나 그냥 그렇게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 늘 외롭게 고립된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만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전부는 아니어도 최근 인터넷 상의 악플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도 근거 없고 무차별적이며 양적으로 무수한 악플은 건강한 사람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와도 같다. 그래서 반드시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어떠한 보호막 없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거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나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음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예방이라 생각한다.
사견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이유가 동반된 사랑을 하는 것이 좋고,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해 절대적 잣대보다는 차이를 설명해 주고 대화를 하는 것이 좋고,
어른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싫어할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이 날 무조건 좋아해 주는 세상이라면 그건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하지만 나와 연계된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준을 모두 자신에게 맞춰서 좋아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이다.
흔히 사람들이 논하는 것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는 말...
그 말은 뭘 해도 결국 원점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플러스면 반대로 누군가는 마이너스라는 소리이다. 그리고 제로라고 말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이동만 하였을 뿐, 전체를 봤을 때는 그 값은 항상 똑같다는 의미이다. 직장 내 팀에서 내가 인정을 받으면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마련이다. 또 내가 받은 인정은 언젠가는 나의 실수나 나의 부족으로 남에게 옮겨질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볼 때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여전히 하나의 조직이자 팀일 뿐이다. 현상을 얻고 잃음에 기준하지 말고, 그보다 위에서 기준을 두어 현상을 바라 보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좋고 싫음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공존함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나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해법이라 생각한다.
여담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비판과 악플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비판은 근거와 사실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면, 악플은 근거와 사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니 근거 없이, 단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악플을 다는 사람이라면 그건 무지와 일차적인 쾌락에 도취된 사람일 뿐이다. 올바른 교육을 받고, 덜 위선적인 사람이라면,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의식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법이다.
안타까운 것은 살기 좋은 환경일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수가 증가하는 인구수만큼이나 비례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더욱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행동이 분노조절장애에서 출발하거나 자신의 행위가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나는 요즘 이런 현상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니 남이 날 근거 없이 폄훼할 경우, 싸우는 방법도 해법의 하나일 것이고,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싸우던지 또는 무시하던지 간에 자신을 믿어주는 가장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흔들림 없이 믿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