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이타심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특히 엄마의 모성애에 의한 이타심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늙은 노모는 여전히 자식 걱정뿐이다.
"단디 다니라, 차조심하고, 밥은 먹고 댕기고"
성인이 된 자식이 어련히 알아서 잘 다니고, 차조심하고, 밥 챙겨 먹고 다닐 텐데.
노모의 눈에는 여전히 아이처럼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그리고 그런 이타심은 자식이 배워서 자식의 자식에게 같은 이타심을 발휘한다.
어쩌면 이타심의 출발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애착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아무리 개인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가족에 대한 이타심은 지니고 있다. 이를 보면 누구나 이타심의 불씨는 하나씩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타심을 좀 더 크게 보려 한다.
남을 위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희생이 진정한 이타심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쩌면 이런 관념이 이타심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고, 마치 특별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그런 덕목으로 여기는 듯싶다.
어찌 생각하면 이타심을 특별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선뜻 남에게 이타적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해도 굳이 자신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우리를 어려서부터 좋은 것에 대해 배우며 성장했다.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상대방을 이해해라 등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익히 배우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커왔다. 그런데 아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오래전 덕목은 잊히거나 때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사실 이타심을 발휘하느냐 마느냐는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크게 뭐라 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들마다 작은 이타심의 불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정이 온전하고, 온전한 가정들이 모여 사회도 온전하다고 본다. 사서삼경 가운데 대학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던가?
이타심이 부족한 사회라면 이타심의 불씨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 이타심을 호소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변화와 성장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