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이타심

이타심은 예절이다.

by 공삼

이타심은 저울의 균형을 맞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편익 중심적이다. 즉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며, 이는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억지스러움이 있겠지만 착한 사마리아인들도 자신이 선행을 베풀어야만 스스로가 만족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또한 선행이 자신에게 자기 편익을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념적으로 이타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타심에 대한 정의는 하나지만 사람에 따라 그 정의의 정도나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요지는 사람은 자기 편익에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여기서 이기심이 좀 더 많다면 이기적으로, 이타심이 많다면 이타적으로 평가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속적인 인간관계에 많은 관심을 두며 살아간다.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자신을 위하는 친구는 한 두 명은 두고 있다.

어쨌든 인간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이타심은 적절한 저울질을 할 수 있는 긍정적 추가될 수 있다.

평상시 사람들은 자기 편익에 맞춰서 살고 있지만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가끔은 자기 편익보다 상대의 편익을 고려하여 이타심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나는 며칠 전에도 이타심을 발휘한 적이 있다.

더운 여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윗집에 사는 이웃이 많은 짐을 가지고 나를 뒤 따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반드시 타야 했고, 타기 위해서는 약 2분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삿짐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짐을 엘리베이터에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거워 보이는 짐을 같이 실어 주었고,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탈자리는 없었다. 그냥 나는 먼저 가라고 하고 천천히 계단을 이용해서 1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동에 사는 사람인데 서로가 굳이 얼굴 붉히며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도 자기 편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상대를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올라갔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인간관계를 생각해서 짐을 들어다 주고 선심을 쓴 것이다. 즉 이타심이라는 추를 저울에 걸어 놓으니 별 무리 없이 잘 지난 것이다.


13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1층, 3층, 5층, 8층 그리고 12층에 멈춰 섰다를 반복했고, 그중 1층과 8층에서 사람이 탈 수 없다는 것에 주민들이 불평을 한다.

나눠서 탈 것이지 한꺼번에 엘리베이터에 물건을 실으면 어떡하느냐였다.


나는 이타심 추를 올려서 좋은 사람이 되었고, 다른 몇몇 분들은 이타심 추를 올리지 않아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짐을 꼭 한꺼번에 실어야 했던 그분도 남을 배려하지 않아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궤변일 수도 있지만, 나는 평상시 이타심은 훈련을 통해서 늘 수시로 필요에 따라 발휘해야 한다고 믿는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착한 사람보다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기 원해서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중 누군가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퍼붓는다.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그 모습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기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평상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나는 원래 이기적인 사람인데 필요에 따라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런 것을 흔히 우리는 예절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요즘 사회가 이타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절에 대한 기본이 없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만큼 집안에서 예절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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