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매일같이 고민을 한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늘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산 없이 산다면 그 결과가 매우 냉혹할 수 있기 때문에 계산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편으로는 순간 망설인다는 것은 이타심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각보다 이타심은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 있어서 늘 고민을 달고 다닌다.
더욱이 이타심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도 때론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또는 이용을 당할 수 있다. 선행을 베풂에 있어서 올바른 칭찬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미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사회는 그런 선행을 베푸는 사람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 속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타심은 다양하게 피드백된다.
고민 없이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자유로움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타심을 발휘할 때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완벽한 이타심보다는 자신을 위한 보여주기 이타심을 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타심을 통한 자유보다는 남의 시선에 결속되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정작 이타심을 행함에 있어서 남의 눈치를 보는 요즘을 생각해 보면 이런 현상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일 것이다라고 짐작해 본다.
고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의 만족감을 갖지 못할 때 찾아온다. 그렇다면 남을 위함에 있어서 고민을 줄이는 방법은 자신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바람은 없어야 할 것이고 남의 시선은 개의치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타심을 행함이 아니한 만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나 청년일 때나 어른이 되어서도 고민을 달고 있는 이타심을 지켜볼 수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데 내가 뭔가를 도와줬을 때 적어도 고맙다는 상대의 답을 기다릴 때이다.
"뭐야? 기껏 도와줬는데, 감사하다는 말도 없어?"
"어라! 자기가 잘해서 된 줄 아나 봐? 거참"
의외로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내가 당신을 도왔소이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그저 자신이 운이 좋아서 잘 풀렸을 것이라 생각하거나 신에게 감사함을 대신 표한다.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가 자신을 위해서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넘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오히려 이타심을 행한 사람이 상대로부터의 좋은 피드백을 바라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타심이란, 좀 더 깊게 보면, 자신이 도와준 것에 대해서도 모르게 하여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도와줘서 상대가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사는 것이 올바른 이타심일 것이다. 만일 이처럼 완벽한 이타심을 가지고 행한다면 이타심은 더 이상 고민이라는 불필요한 것을 달지 않고 자유롭게 발휘될 것이다.
가끔씩 신문을 접하다 보면 완벽한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선행이 밝혀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주로 그런 사람들이 알려지게 되는 경우는 주위 사람들이 발견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그 사람의 선행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타심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어쩌면 완벽한 이타심을 닮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어쩌면 이타심이 많은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이타심을 자유롭게 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타심이 넘치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필자는 누구나 다 아는 그리고 아주 뻔한 방법을 제안해 본다.
이타심을 행하는 사람이 아닌, 이타심을 제공받는 사람들이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이타심은 매우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에 걸쳐 퍼질 것이라 본다.
어릴 때는 부모의 교육과 학교 교육을 통해서 친절함을 배우며 살아가다 나이가 들어서 아주 간단한 감사 합니다와 인사하는 법을 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감사와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만일 어른 스스로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변화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외로 나이 어린 사람들의 행동이 어른들을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했었지"
"그래, 아이들도 저렇게 생각하는 데, 내가 부족했군"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인사를 잘한다면, 이타심을 행하는 사람은 고민 없이 그리고 부담 없이 이타심을 행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기분 좋은 피드백을 받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타심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함을 표하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신에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잘 보이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타적이지만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 고민을 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민이 되는 이유는 환영받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과 잘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이다.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타심에 우호적인 사회를 만들고 습관 되지 않은 이타심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이에게는 지속적인 교육이...
청년에게는 교육과 체험이...
성인에게는 사회적 관심과 동참 유도가 그 해결책이라 본다.
그리고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분쟁과 싸움이 넘치는 매스미디어 소식보다는 어서 빨리 서로를 위하는 내용의 소식을 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