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많이들 겪는 일이 있다면 고자질일 것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자기 생각을 동료에게 말했는데 어느새 그 이야기가 윗선이 알게 되었거나 또는 다른 동료들이 알게 되어 곤란했던 경험은 적어도 한 두 번은 겪어 봤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전달한 사람은 자신이 남에게 고자질을 했다고도 생각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그 사람의 유년 및 청소년 시기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전에 구분해 둘 것이 하나 있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고자질 행위를 고자질이라 보지 않고 고발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 두 가지 단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고자질은 개인의 안위를 위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면 고발은 공익을 위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고자질이 고발 인양 착각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겨 놓은 상태에서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마냥 말을 한다. 그리고 더 황당한 것은 고발같이 치장한 고자질을 정말 고발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이다.
흔히 어렸을 때는 친구들에게 말을 옮기거나 또는 어른에게 일러 받치는 행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크게 제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시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어른들은 때론 고자질을 고발의 의미로 생각해서 오히려 독려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 익숙한 유년 및 청소년 시기를 지낸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자질과 고발의 차이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늘 전처럼 해왔듯이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는 동안 우연찮게 발현되는 습관적인 발언이 서슴지 않고 나오게 된다. 주로 이런 현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술좌석이나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특히, 술을 마심으로써 경계나 조심성이 느슨해지는 순간 옛 버릇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먼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인데, 거의 대부분이 남이 이야기한 것을 들은 것처럼 말을 전달하는 방식인데 여기에 자신의 책임을 쏙 빼고 말을 한다.
"한 답니다. 하는 것 같아요.라고 하던데요. 하데요.라고 들었어요 등등"
"누가 그러던데요. 사원 A이 B과장과 친분이 있다고 하던데요. A 사원이 제안하는 것은 무조건 B과장이 들어준답니다."
"총무과 C가 그러던데요. D랑 E가 사귄다고 하데요 ㅋㅋㅋ"
"K과장님, 아주~~ 애처가라고 하던데요?"
다음으로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바로 "동조"이다.
동조는 자기 자신이 남의 말을 직접 옮기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가 이야기한 것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매우 크다. 어쩌면 말을 옮기는 사람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표 나지 않게 동조하는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아~ 저도 들었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게 사실이라면 음 고민해봐야겠네요."
"그런 것 같군요.
동조의 효과는 자신의 직접적인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는 방법으로 남을 함께 고자질하는 효과도 가지면서 문제가 될 때 자신만 회피하게 하는 나름의 고급 기술이라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으로 동조하는 사람을 "박쥐"라 부른다. 또는 "기생충"이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고 유치하다. 남들의 이야기를 옮겨야만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위안과 쾌락이 주요 핵심이다. 좀 더 단순하지 않은 이유를 대자면 그렇게 남의 이야기를 옮김으로써 그 자리 그 순간 대화의 주체가 되는 맛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관심을 받고자 하는데 이유가 서려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가나 있다.
결국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속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절대 아니다. 자신의 행동은 매우 객관적이고 일부 주관적일 수 있으나 남들이 다 동조할법한 내용을 말한다고 믿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화를 살펴보면 자신이 책임질 필요 없는 대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고자질을 하는 사람이 어떤 의식으로 고자질을 하는지 어떻게 알 것인가? 그저 오래전부터 그리 살아왔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신은 옳다고 판단하는 법이다.
말을 옮기는 버릇은 비단 나이 젊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래전 학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를 운영한 바 있는데, 이때 어르신들도 자신만의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서 남에 대한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의외로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들의 더 많은 험담과 말 옮김, 그리고 고자질을 행하셨다. 아마도 그 세대에게는 그런 삶이 익숙해서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사람의 입은 의외로 가볍다는 생각이다.
내 생각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귀로 직접 듣지 않았다면 인정하지도 동조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내가 높은 위치에 있다면 "그래? 그것에 대한 증거가 있어?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라고 말한 사람에게 책임론을 부과함으로써 말에 대해 조심성을 부여하고, 내가 낮은 위치에 있다면 "제가 뭘 알겠습니까?" 라며 수긍도 동조도 하지 않는 법이 최선이라 본다. 즉, 나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아니면 이런 고민이 싫다면 그저 남들처럼 박쥐나 기생충처럼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고자질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신은 고발이라 생각하겠지만, 고자질을 통해서 어떤 사실을 들은 조직은 그 고자질에 대한 내용을 접수할지언정 정작 고자질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법이다. 그 이유는 고자질은 그 사람의 인성을 반영하기 때문인데, 언제든지 자신의 뜻에 반목하는 사람 또는 조직의 의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남들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조직은 찌라시를 이용할지언정, 찌라시에 휘둘리지는 않는 법이다.
이런 말이 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 순간 비밀이 절대 아니라는 말...
만일 중요하다고 판단되고 말이 밖으로 나와서 나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여지 또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말을 삼가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런 기준에 대해 모호하다면 내가 하는 말이 남들의 입에 떠돌아다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이라 본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의외로 부모가 자식이 고자질할 때 그 말에 대해 그냥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한 말이 아이 자신의 편의에 의해서 치장된 말인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을 하는 부모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보통은 이렇게 답한다.
정말? 걔가 그랬어?
내 딸도 이런 모습을 보인적이 많다. 처음엔 나도 그대로 믿으려 했으나 사실을 왜곡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입장만 말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그랬구나, 그런데 딸, 딸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 생각엔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아빠가 유치원 선생님과 네가 말한 친구에게 한번 물어봐야겠구나"
아직도 가끔씩은 대화를 할 때 자기 편의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지만 확인을 해야 한다는 아빠 말에 전보다는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을 전달하려 하고 맨 마지막에 자신이 기분이 나빴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고자질은 남을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태형을 때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심한 태형 자국이 남기 때문이다. 때론 고자질은 또 다른 거짓말로 왜곡되어 진실처럼 떠다니기도 한다.
적어도 어떤 말을 옮기기 전에 한 번쯤은 자신의 편익과 쾌락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데서 편익과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