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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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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Mar 01. 2020

비겁한 아이들

(이 이야기는 어떤 현상을 가상으로 만들어 본 내용입니다.)


한 겨울, 아파트 놀이터에는 추운 날씨 탓에 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 없다. 검은색 긴 패딩을 입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그네에 앉아서 잡담을 떨고 있을 뿐이다. 밖에 나가고 싶은 다솜이는 날씨가 춥고, 검은색 언니, 오빠들 때문에 놀이터에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한참을 창밖을 보고 있던 다솜이가 갑자기 상기한 얼굴로 힘차게 외친다.


"아빠, 저 나가서 놀래요". 

"응? 안 춥겠어?" 

"네 옷 따뜻하게 입으면 돼요"

"그래 그럼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집으로 들어오고 알았지?" 


다솜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혹시나 너무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밖을 내려다보았는데, 방금 전까지 있었던 검은색 까마귀 모양의 중고등학생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다솜이 또래의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다보니 밑에 다솜이가 아파트 놀이터로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놀겠지 싶어서 다솜이 아빠는 자기 하던 집안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솜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의외로 너무 일찍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었니?"

아무 말하지 않는 다솜이 얼굴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혹시나 아빠한테 말하면 혼이 날까 봐 무서워서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다솜이를 달래고 또 달래서 겨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게 되었다. 


"저기요 아빠, 어떤 언니들이 미끄럼을 못 타게 해서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미끄럼틀은 언니들만 타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크게 외쳤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해도 계속 미끄럼을 못 타게 해서 그냥 왔어요"

"싸우지는 않았고? "

"네"

"같이 내려가 보자"


그렇게 아빠는 다솜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했다. 

마침 놀이터에는 다솜이가 말한 언니라는 아이 둘이서 미끄럼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미끄럼을 타고 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다솜이에게 가서 미끄럼 타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다솜이는 다시 미끄럼틀로 가서 미끄럼을 타려고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잠시 후, 미끄럼틀 옆에서 쉬고 있던 그 아이들이 다시 미끄럼틀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솜이 아빠는 어떻게 행동을 하나 싶어서 잠시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솜이의 말처럼 다솜이가 미끄럼을 타려 하면 여자아이 둘이서 교대하며 미끄럼 타는 것을 방해하듯이 길을 막고 둘이서만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다솜이는 자기보다 키가 큰 언니들이 속도를 내며 미끄럼을 타는 모습에 혹여나 부딪힐까 봐서 망설이고 있었다. 미끄럼을 타려고 하면 얼른 다른 아이가 다가와서 다솜이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 바로 내려가지 않고 자기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내려간다. 고의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여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그런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빠는 미끄럼틀로 갔다. 


"다솜아 왜 그러니? 괜찮아?"라고 물으니 다솜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는 다솜이가 미끄럼을 타는 것을 방해하던 아이들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얘들아, 왜 미끄럼 타려는데 방해하니? 여기 놀이터는 다 같이 함께 노는 곳이지 않니?" 


다솜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놀랐던지 당혹해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시 다솜이 아빠는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방해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두 아이중 한 아이가 당돌하게 말한다. 


"여기 놀이터는 다 함께 쓰는 곳이죠. 근데 왜요?"

"아, 그렇지? 너희도 그렇게 알고 있지? 그런데 아까부터 저기서 보고 있는데 너희 둘은 내 딸이 미끄럼틀을 타려 할 때마다 앞을 막고 너희 먼저 타려 했잖아. 안 그래?" 

"그런 적 없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는 아이를 보고 당황했으나 다솜이 아빠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그럼 이번에 내 딸이 미끄럼 타면 되겠네?" 


그렇게 말하고 다솜이 아빠는 딸아이를 미끄럼틀을 타도록 했더니 그 아이들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떠나려는 아이들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다. 


"너희들, 내 딸아이 미끄럼을 타려 할 때 방해한 것 맞지?"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당차게 답한다. 

"아까 아저씨가 봤는데, 너희들은 쉬고 있었고, 내 딸아이가 미끄럼을 타려 할 때, 너희 둘이 귓속말로 소곤거리더니 갑자기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했잖니? 안 그래?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리 말했더니 두 아이 중에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두 아이는 놀이터를 떠나 버렸다. 


" 집에 가야 해요." 





요즘 들어 아이들 간의 집단 이기주의가 전보다 더 많이 팽배해진 듯싶다. 실제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대상으로 짝을 이뤄서 방해하는 식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뭐라 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큰일 나는 세상이다. 늘 조심해야 한다. 
짝을 이루고 끼리끼리 모여서 행동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짝을 이루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짝을 이루면 유독 이타심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평상시 착한 사람도 짝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면 알 수 없는 사명감으로 공동의 목표를 세워서 서슴지 않고 공동행위를 하기 시작하는 데 유독 아이들에게서 남을 방해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집단을 이루어 한 아이를 저지하고 방해하는 것이 그들에게 공동의 목표로 작용하여 함께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런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늘 존재해 왔다. 실제 아이들에게 심층질문을 해 보면 여럿이서 한 명을 괴롭히는 일이 공동으로 함께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과 매우 재밌는 놀이거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이라 하여 그들을 함부로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화가 나도 상대를 생각하여 친절하게 말해야 하고, 
피해자인데도 피의자의 기분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착하다는 말이 바보라는 뜻이 되고, 
악하다는 말이 똑똑하다는 뜻으로 여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정직, 정의를 늘 구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은, 비록 아무리 어릴지라도, 정직과 정의는 위선을 위한 도구일 뿐 진정으로 구하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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