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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Feb 13. 2020

나에게 제사는 규칙적으로 겪는 서바이벌 게임과 같다.

전날 구입한 제수용 재료들을 식탁 위에 널려 놓고, 먼저 탕국을 끓이고, 나물을 데쳐서 양념하고, 전들과 산적을 구웠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음식을 냉장 박스에 담아서 차로 약 1시간 20분을 달려 본가에 도착했다.

이렇게 집에서 모든 제사에 사용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본가로 가서 제사를 지낸 지 약 4년 정도 되었으려나? 사실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사를 내가 집에서 직접 준비한 계기는 나이 든 모친이 심장 관련 시술을 하고 난 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부엌이 좁고, 늘 준비하는 사람만 준비를 하는 그 모습이 싫어서, 게다가 음식준비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래 저래 훈계를 두는 모습이 싫어서 아예 내가 준비하겠다고 선언을 시작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렸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더 되었으려나?


사실 기간보다 더 많이 한 느낌이 든 것은 설 명절, 추석명절, 할아버지 제사, 할머니 제사, 그리고 9월 9일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의외로 횟수가 많아서 많이 한 느낌이 든다. 올해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합쳤고, 9월 9일 제사는 지내지 않는 것으로 해서 그나마 횟수가 3회로 줄었다. 그래도 매번 제사 때마다 제수용품을 구입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의외로 신경이 쓰인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모든 음식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정도다 탕국에서 나물 그리고 산적과 전을 만드는 데 시간은 대략 3~4시간이면 충분하다.생선은 직접 말려서 본가에서 찌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러 본가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동안 쏟아지는 늙으신 부모님의 한 서린 한탄이다. 게다가 그 한탄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물론 연세가 있으셔서 그러려니 하지만 매번 같은 한탄과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가슴부터 답답해져 온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님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사실이라 생각하고 못마땅한 나를 보고 늘 나무라고 한탄하신다. 그나마 힘은 없어도 나름 몸상태가 조금 더 나은 나의 아버지는 그저 처량하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술 한 잔이 입에 들어가면 아버지도 당신의 상상을 진실처럼 말씀하시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지만, 매번 이어지는 한탄과 섭섭한 소리로 인해 나는 너무나 아프다.

물론 나의 부모도 유독 나에게 한탄을 쏟아내시는 걸 보면 그동안 마음이  많이 아프셔서 그랬으리라 생각은 한다.

뭐라고 댓구라도 하면 대든다 말하시고,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무슨 일 있냐고 말하신다.

이런 모습은 주로 상대가 정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발현되는 현상인데... 아마도 내가 당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듯싶었다. 흔히 고부갈등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지켜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당신들의 아들인데, 그것도 막내 아들인데.... 이런 걸 무슨 갈등이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궁금해 진다.


그러나 두 분이 바라시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조건 수긍하면 고스란히 모든 것이 나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맞장구 치면 된다지만, 좀 더 속된 말로 공수표 날리라고 하는데, 만일 그렇게 해서 좋아진다면 아마도 내가 먼저 그리 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어떠한 대답 없이 잘 모른다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할 뿐이다. 그나마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어서다. 여기서 짐은 나도 모르는 부채를 뜻한다.




오늘도 10년 차이나는 큰 형이 용돈을 보내왔다며 자랑을 하신다. 그동안 매월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보낸 나는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흔히 가까이 있는 자식보다 멀리 있는 자식이 더 소중하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와 비슷해 보인다. 더욱이 저번 설 명절도 마찬가지고, 이번 제사도 큰 형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저 돈과 전화로 퉁...


지난 설에 너무 많이 장만했다며 한 말씀하시며 간소하게 하라 말씀하셔서 정말 간소하게 준비를 했는데 이제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며 서운해하셨다. 오채를 했었는데 이번에 삼채를 했더니 그러신 듯 싶었다. 그런데 그리 말씀해 놓고, 제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데 당신들이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다면서 되려 가져가라고 말씀하신다.


힘들면 말하라고 한다. 많은 돈은 줄 수 없으나 몇 백은 줄 수 있다고, 그리 말씀을 하시고 잠시 후, 다른 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신다. 자식을 위해서 뭔가를 계속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줄돈으로 집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을텐데,,,, 아마도 자식에 돈을 주면, 그 돈이 펑튀기 되어 더 많은 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으시는 듯 싶다.


이번 제사부터 모친께서 생선은 본가에서 따로 준비하겠다고 하여 대신에 생선값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막상 돈을 드리려 하니 가족끼리 돈가지고 이러는 거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저 대신 생선값을 위해 돈을 쓰셨으니 그에 대해 돈을 드리려 했을 뿐인데, 그것마저도 오해를 하신다.


앞으로 당신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식사를 하면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즐비하게 늘어놓으신다. 다리가 아파서 어딜 못 움직인다. 나물을 먹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못 해 먹는다. 너의 큰 형이 걱정이다. 등등등.


대부분 나이든 노인분들이 그렇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두서 없이 말씀들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이해는 하지만, 가끔은 그 자체가 너무 힘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제사 문화에 익숙했던 터라 제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아주 어렸을 때는 제사 때는 나만의 파티였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제사는 더 이상 좋지 않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제사에 대해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내가 장만해서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은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설렘이 슬며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짐을 풀고 제사상을 차리는 순간부터 식사하는 동안, 그리고 제사상을 물리고 치우는 동안 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

한참 게임을 뛰고 나면 가슴이 답답할 정도다.


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서 집안의 가풍을 이어감에 있어서 좀 더 도움이 되고자 했을 뿐인데, 그리고 늙으신 부모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제사를 차질 없이 이어가고 싶었을 뿐인데 매번 명절이나 제사때마다 늘 문제가 따른다.


남들은 며느리가 시집살이한다고 하는데, 나는 내 본가에서 시집살이를 한다. 그것도 서바이벌 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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