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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Apr 07. 2020

ID(이드)와 EGO(에고)의 목소리

ID의 목소리

나도 모르게 불량 주부로 변해가는 것 같다.

아니 완전히 모르지는 않았다.

매우 당연하게 생각했고,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아이가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 내가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하루는 아내가 나보고,,, 왜 그리 예민하냐고 질책을 하고,, 그 순간,, 내가 왜 예민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나 자신이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예민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였다. 절대적으로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시작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느라 정신없이 적응하는 데 집중했고, 전업주부 생활 속에서 점점 주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에 내가 가져보지 못한 모습이 새로이 태어났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과 동시에 모든 계획들이 뒤 바뀌는 바람에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마음속은 한 없이 혼란스럽다. 지금쯤이면 이런 걸 준비하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이걸 해야 하는데라는 조급함이 앞서기 시작한다.


원래라면 아이가 학교를 입학해서 초등학교 생활을 해야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다 보니 모든 것이 내 숙제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힘든 시기라서 그러려니 생각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을 잘 알기에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냉정할 것이라는 생각에 점점 답답해져 온다.


솔직히, 더 나아지지 않는 생계도 고민이 되고,

나 스스로 침체되는 것도 고민이다.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면 일을 통해서 비빌 때가 있겠지만, 비빌 곳 전혀 없는 것도 사실 살면서 버거움을 증가시킨다. 그만큼 일이란 자신이 사는 동안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 존립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가장 좋은 것이 생각한다. 일이 힘이 들어도 해결을 통해서 보람을 얻게 되고, 그 보람의 결과인 "돈"을 얻게 됨으로써 나를 포함한 가족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된다.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그 전부가 아닌 것이 나머지 전부를 위협하기도 한다. 마치 코로나처럼.


그렇지 않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게 그렇지가 않다.


하루에도 수십 번 침체 극복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여 더없이 괴롭다. 이럴 땐 아무리 옆에서 힘을 내라는 지원군이 있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부정하고 싶지만, 현재 나는 침체와 극복을 0이라는 선상 아래에서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EGO의 목소리

한편으론 이 과정 또한 지나가리라 희망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또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점검한다. 솔직히 지루한 감이 크지만, 0이라는 선상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이보다 더 힘든 일도 겪어 본 나에겐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휴식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부족하다면 먼저 주위를 살피고 부족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고,

아무 이유 없이 힘겹다면, 그저 쉬어가면 관망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당장 힘이 든다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힘들 때 드는 고민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모으는 것이 더 이득일 것이다.


좀 더 냉철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원하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그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더 나은 장사라는 점이다. 고민에 빠져 지금 하고 있는 것마저 등한시한다면,,, 결국 고민이 바라는 바대로 살아갈 뿐이다.


0의 선상 위를 살지 못하더라도 아래에서도 충분히 침체와 극복을 거듭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침체와 극복을 가르는 그 속에도 또 다른 0의 선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존재하지 않는 0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렇게 응하고 살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았던 0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0이 아니라 새로운 0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기준에 따라 나를 존립시켜 사는 것이 현명하리라 본다.



ID와 EGO의 타협

오늘은 유독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무료함에 피곤함을 느끼고, 게으른 하루를 시작해서 그런지.. 더 힘든 하루였다.

그러다 두 가지 관점에서 내 속 마음을 생각해 보고 나 스스로가 타협을 한다.

만일 포기할 삶이라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매 순간 내 삶을 걱정한다는 뜻이며, 좀 더 나은 모습이길 바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마음 가짐 덕에 나 자신도 나를 믿을 수 없을 지경에 놓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살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 고민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의 0이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든 간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그 0을 잘 보관하고 흔들림 없이 있다고 믿는 것이 삶에 가장 큰 힘이라 생각해 본다.



사람은 고통을 느낌으로써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고민한다는 것도 살아있음과 동시에 더 좋은 것을 향해 가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굳이 한마디 더 하자면 가능하면 고민할 때는 항상 이드와 에고의 생각을 같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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