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타파 그리고 나 스스로의 편견

by 공삼

어느 정도 시간을 주부로 살다 보니 이젠 편견을 즐기게 된다. 나를 위한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심리도 있겠지만 즐겨보니 재미가 있다. 나르시시즘이 심해졌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외치면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히려 편견에 주눅이 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반면 주눅 들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넘겨버리고 적절히 “내가 가정주부요”라고 외치고 다니면 의외로 사람들은 빨리 수긍하거나 자신들의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모른척하거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아 네. 제가 아내 대신해서 가정주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제 아내가 더 잘 버니 제가 당연히 집에서 일을 해야지요”


“더 나은 사람이 밖에서 일하는 게 당연하지요”


“난 사람은 밖으로 풀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제가 가정주부입니다”


“애 엄마가 일을 하면 애는 누가 봅니까? 제가 봐야죠”


“아이가 제가 엄마 하면 더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에 한 술 더 떠야 한다. 웬만한 주부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나서서 이야기하면 게임은 종결된다.

한 번은 싱크대 기름때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마트 계산대에서 아주머니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계산대 직원 아주머니도 서로 아는 모양이었다. 내가 볼 때 대화 때문에 계산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였고 조금은 짜증이 났었다. 다음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랜지나 레몬 반개에 베이킹 소다를 뿌려서 닦아보라고 말을 했었다. 순간 분위기가 조용해지더니 아주머니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었다. 그때 한마디를 더 날렸다.


“아 네, 제가 주로 집안일을 해서요. 한번 해 보세요. 잘 닦일 겁니다. 유튜브에도 나와요... 하하하”


그때 옆에 딸아이는 시식대에서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대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기다리는 자체가 몇 초이든 몇 분이든 지루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개별적인 대화는 다른 자리에서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계산대 앞에 머물면서 서로 아는 사람들이라고 계산대 직원과 대화하는 모습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앞에 계산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오히려 날 보며 웃고 지나갔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여기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부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니다. 나는 누가 인정하던 안 하든 간에 가정주부가 되면서 남성이 주부가 되면 이상하다는 시선을 스스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남자가 가정주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의심하고 비꼬며 스스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물론 가정주부를 이루는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여성 그룹에 속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벗어나거나 건들기만 해도 마치 그 틀 안에 매우 중요한 것이 있는 것 마냥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가 밖에서 일하고 돈 벌어오고, 여자가 가정 살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견해를 나의 가정을 위한 기준으로 여기며 따를 필요는 없다. 남의 의견에 나를 맞춘다면 그것은 인생의 낭비이자 인생 실패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남의 견해가 나를 결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으로부터 발현되는 편견은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데, 나 스스로부터 발현되는 편견은 의외로 타파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부산대학교에서 늦게 학위를 받고 잘 버티다가 기회가 좋아서 나름 연구교수(계약교수)까지 일을 했던 탓에 나도 나 스스로에게 허세라는 치장이 강하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 나이 때문이었을까?

사실 8살 차이 나는 아내와 결혼해서 살면서 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잘 호흡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유인즉, 나이는 비슷할지는 몰라도 의외로 그들과 비슷하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유년시절, 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부장적인 태도로 행사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무겁고 무서운 집안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남자가 우선이라는 것도..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매우 싫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함께 치유하며, 함께 행복하려고 노력한 세월을 지나서 볼 때 내가 알던 가부장적 생활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사랑하고 살아가는데 굳이 갑을을 가리며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실 가부장적인 태도로 살아갈 용기도 없었거니와 늘 가정에서 죽어서 살다 보니 어떻게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솔직히 나는 내 아버지가 매우 무서웠다. 지금에서야 80이 넘은 나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블로프 효과였을까? 나는 아버지가 늘 무서웠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고함을 지를 때면 최근까지 마음 한 구석에는 숙여야 한다는 외침이 들릴 때도 있었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가부장적이지는 않겠지만, 사회생활할 때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적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생활방식이나 나의 사고방식 모두가 자신들과 틀리다고 반향을 들곤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바로 "왜 그렇게 삽니까?"였다. 나름 학위까지 받고 죽어 사는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일개 계약교수였지만 명색이 대학 내 교수라 함부로 말을 못 하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왜 그렇게 사십니까"라는 소리를 했었다.

그럼 난 농담 삼아 이리 이야기했다.


"하이고 제 아내도 박사다 보니 조금 벅찹니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니 어쩝니까?"라고.


그럼 게임은 끝난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여자가 박사라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어리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이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사는 모습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의외로 많은 부분을 이해해 주셨고 가끔은 다독여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분들은 아직도 내 나이가 자신들의 아들 딸과 비슷하리라 생각하신다. 하지만 내 나이를 말씀드리면 순간 말을 잊지 못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70년대 초반 생의 모습에는 섞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섞이기엔 나이가 많은 그런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잘 살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였다. 그냥 아내에게 맞춰서 사는 것이 해답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벗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편견이 하나 있다. 그건 내 나이 또래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일 텐데, 남자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나름 잘 나가던 계약교수 직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금방 다른 일을 찾아서 일을 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 말대로 냉혹한 것일까? 일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하니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 스펙인데도 일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 나의 전공인 "인지과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나 학부에서 박사학위까지 전공이 틀리다 보니 매우 치명적이다. 그래도 나름의 경력이 있음에도 나를 쓰이게 할 조직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때론 강하게 자괴감으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아내는 늘 나에게 응원을 해 준다. 그래도 나는 일을 좀 더해야 하는데,, 아내가 일할 때 내가 좀 더 일을 하면 좀 더 윤택하게 잘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가정주부로 산다고는 이야기는 했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다시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서려 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적은 허울로 남은 지난 과거의 불필요한 모습일 것이다.

근데 왜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한동안 가정주부로 살면 천천히 변하겠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리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살 필요는 없을 거라 믿는다.

매일같이 용기 내라며 힘을 주는 아내가 있어서 고맙고, 아침마다 애교 떠는 딸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내는 나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고, 딸은 내가 지금 하는 가정주부일에 대한 사명감과 사랑을 준다. 당분간 가족의 힘을 업어서라도 나 스스로의 편견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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